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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 아카데미/제자도

믿음이란?

by 엉클창 2021. 10. 19.

 

1. 믿음이란 하나님을 얻기 위해 이해를 상실하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1 Sickness unto Death, 38쪽 이 부분은 "필연의 절망은 가능성의 결핍에 있다"는 단원에 나오는 내용임.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성서의 구절은 결국 이해가 소멸되는 곳에서 발생한다.]

To believe is indeed to lose understanding in order to gain God.


즉, "믿음이란 하나님을 얻기 위해 이해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믿음은 질적 비약이다. 믿음은 도약이다. 수학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믿음은 어떤 불연속 함수다. 양적인 합이 믿음에 이르지 않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해도 이것이 믿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헤겔에게서 믿음은 정신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the person's awareness of himself or herself as Spirit)[#2 International Kierkegaard Commentary, For Self-Examination and Judge for Yourself!, 68쪽]이다. 헤겔에게 믿음은 이성보다 고차원적이지 않다. 신 인식은 이성에 의해 밝혀질 뿐이다. 믿음은 단지 이성의 역할을 위해 거쳐야 할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즉 믿음은 이성의 하위 개념에 해당되는 시녀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헤겔에게, 종교는 표상(예배의식)을 통해 나타나고, 이에 반해 철학은 표상의 형식으로 구성된 진리를 파악한다. 다시 말해, 그에게 진리를 파악하는 것은 이성이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에게, 인간의 이해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의 이성은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부패해 있다. 따라서 그에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믿음뿐이다. 간단하게 그림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2. 믿음은 내재화된 진리다!

개별적 현상과 보편적 법칙 중에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예를 들어, 과학 법칙을 생각해 보자. 뉴턴은 어느 날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한다. 개별적인 사건으로 각각의 사과가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들이 떨어진다. 그는 이런 현상을 보고 보편적인 법칙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진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개별자에 있는 것일까, 보편자에 있는 것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자에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법칙이란 입증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단 하나의 예외적인 현상만 나타나더라도 이 법칙은 오류이다. 법칙이란 어떤 예외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율법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천 번을 잘했어도 한 번 도둑질 하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법칙은 반드시 개별적 현상에서 증명가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진리란 개별적 사물에 적용되어 나타나야 한다. 바로 이런 개별적 현상 속에 입증이 되어 나타난 진리, 바로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말하고자 하는 내재화된 진리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자기 것으로 만든 진리이다. 아래 그림으로 본다면, 진리를 자기 것으로 만든 자가 바로 단독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진리는 민족정신에, 혹은 시대정신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단독자에게 나타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독자는 또한 기독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요, 그분의 제자들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분은 현재 이 땅에 없다. 다만 그분을 따라가는 제자들에 의해서만 진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극적 영웅은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한다.
신앙의 기사는 단독자가 되기 위해 보편적인 것을 포기한다.[#3 Fear and Trembling, 46쪽]

 

 

3. 믿음은 무한 체념이 있은 후에 나타난다

키르케고르는 무한 체념(infinite resignation)을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시험에 대해 설명한다. 키르케고르의 무한 체념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해하는 데에 본질적인 개념이다. 무한 체념은 믿음 이전의 마지막 단계다. 이 운동을 하지 않는 자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무한 체념에서만 믿음을 통해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4 Fear and Trembling,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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