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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기도9

정의가 아닌 사랑이 심판인 기도 ▣ 출처: 이 작품은 1849년에 출판된 『권위 없이』(Without Authority)에 있는 “금요일 성찬 때의 두 개의 강화”에서 첫 번째 강화의 기도입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시여,주님은 이 세상에 심판하러 오지 않았습니다.(요12:47)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랑받지 못한 사랑이 됨으로,세상에 대한 심판이 되셨습니다.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우리는 주님 말고는, 누구에게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아, 그러나 우리가 적게 사랑했기 때문에,우리에게 닥친 심판이 당신이 사랑이라면,그때 우리는 누구에게 가오리까?(요6:68)당신께 가지 않는다면,도대체 누구에게 가오리까?오, 이 암담함이여!당신이 실제로 우리를 긍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도대체 누구에게 가오리까?오, 이 절망이여!주님과 사랑.. 2024. 11. 13.
키르케고르의 묘비명 소개합니다 DET ER EN LIDEN TID, SAA HAR JEG VUNDET, SAA ER DEN GANSKE STRID MED EET FORSVUNDET, SAA KAN JEG HVILE MIG I ROSENSALE OG UAFLADELIG MIN JESUM TALE. 잠시 때가 지나면, 나는 승리하리라, 모든 싸움은 끝나리라, 장미 꽃 속에서 그때 나는 안식하리라, 그리고 언제까지나 나의 예수와 이야기하리라.” 2023. 7. 3.
07 키에르케고어의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께 모든 것을 올바로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한 가지만 당신께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사랑이 더욱 커지도록, 그 사랑을 더욱 불태울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순결하게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이 기도를 듣고 계신 그리스도시여, 잔인하게도, 누가 당신을 사랑하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는, 그저 사랑의 대상일 뿐인, 그런 사랑이 아닌 당신이여. 분노하여, 누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질투하는, 그저 심판일 뿐인, 그런 사랑이 아닌 당신이여. 오, 주여, 아닙니다. 당신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두려움과 염려만 불어넣었을 겁니다. 그때, “당신께로 가는 것”(마11:28)은 무서운 일, “당신께 거하.. 2019. 8. 10.
06 키에르케고어의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진실로 성령님이 우리를 밝히시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도록 도우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겸손하게 눈을 내리뜬 채로, 우리가 멀리, 더 멀리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탄식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때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하신 말씀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던 세리에게 하신 말씀이,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타나게 하소서. 기도 해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이 말씀에 의하면, 세리는 멀리 서 있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홀로 서 있.. 2019. 8. 9.
05 키에르케고어의 기도 기도 해제 영어로 “If I were in your shoes”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내가 만약 당신 입장이라면”으로 옮깁니다. 영어에서 표현한대로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면 느낌이 어떨까요?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동정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정확히 다른 사람의 입장에 되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고난당하는 자는 슬퍼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몰라요. 나를 이해할 수 없죠. 당신은 내 입장이 될 수도 없어요. 내 입장이 되었다면, 내 입장이 될 수만 있다면, 완전히 내 입장이 되어 나를 이해했다면, 당신은 다르게 말했을 거예요. 인간은 누구나 정확히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확히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처지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2019. 8. 8.
04 키에르케고어의 기도 해제 이 기도는 누가복음 7장 47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적게 사함을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는 말씀은 심판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위로의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정의가 심판입니다. 정의는 가혹한 심판이요 사랑은 너그러움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심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심판한다 해도, 사랑은 너그러운 심판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가혹한 심판이라는 겁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보다 더 가혹합니다. 바벨탑에서 언어의 혼잡보다 더 가혹한 심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보다 더 가혹한 심판입니다. 바로 이 가혹한 최후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죄 .. 2019.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