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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샘21

고통과 기쁨의 가능성 NB:207(Pap. VIII1 A 97) n.d, 1847우리의 지상적 존재(Tilværelse)는 고통이지만, 그 안에는 기쁨의 가능성이 잠자고 있다. 아기는 태어날 때 울지만, 잠든 가운데서 미소 짓는다. 이 말은 카르다누스(Cardanus)의 관찰에 근거한 것이다. ⸻해설이 문장은 실존의 이중성을 매우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합니다. 고통 속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 안에 이미 기쁨의 가능성이 내재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 존재의 희망적 구조를 암시합니다. 아기의 울음과 미소는 삶의 시작과 미래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2025. 5. 15.
키르케고르 명언 모음(업데이트 중...)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폭군이 죽으면 그의 통치는 끝이 나고,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통치는 시작된다. 2023. 4. 16.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기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지 못한다면, 최악의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타락하고, 가장 비참한 것들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비겁한 낙담을 배울 수도 있고, 성령을 소멸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반항과 절망을 배울 수도 있다. 고난의 훈련은 그만큼 위험하다. 만약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지 못한다면,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이 부작용을 일으킬 때처럼 끔찍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훈련에서는 먼저 그 길을 가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순종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브리서 5:8) 2021. 5. 19.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기 사람이 만족하는 것은 적은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땅의 가장 많은 부를 소유자에게, 그것에 만족하라고 말했다면, 아마 그는 틀림없이 당신에게 웃었을 것이다. 혹은 그가 “나는 이 모든 것에 만족해야 하지”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아마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가 도대체 얼마나 더 요구할 수 있겠는가. 가장 많은 것에 만족하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건방진가!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적은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비움의 미학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게 가짐으로 소박한 낙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다. 물건은 줄이고 부를 늘리려는 것이 아니다. 적은 것에 만족함으로써, 점점 더 하나님을 향한 필요로 채우려는 것이다. 점점 더 적은 것에.. 2020. 10. 20.
무엇이 완전함일까? 무엇이 완전성일까? 사람들은 많은 것으로 삶을 채우고 싶어 한다. 차도 갖고 싶고, 집도 갖고 싶고, 좋은 가구도, 좋은 컴퓨터 등등... 아무래도 잘 사는 것이 궁핍하게 고생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더 완전해지는 걸까? 점점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할수록 완전해지는 걸까? 점점 더 적은 양을 필요로 할수록 완전해지는 걸까? 잔에 물을 가득 채울수록 완전해지는 걸까? 잔에 물을 적게 비울수록 완전해지는 걸까? 재물, 권력, 지배, 명예, 부러운 외모와 같은 것들을 다 소유한 사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질투를 자극하는 사람이 더 완전해진 걸까? 입은 옷 때문에 사람을 몰라보는 것은 어이없는 일 아닌가? 옷이 아니고는 사람을 알아 볼 수 없는 것도 어이없는 일 아닐까? 사람이 옷을 만드는가, .. 2020. 10. 17.
권력 어떤 사람도 삶을 죽음만큼 지배할 수 없다. 2020.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