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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콩깍지가씐사랑16

15 사랑은 어떻게 두려움을 내어 쫓는가? 이 세상에 대부분에 벌어지는 일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제로섬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윈윈 게임도 있지만,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전부 제로섬 게임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누군가에게 주면 그 사람 주머니에는 돈이 있지만 내 주머니에는 돈이 없다. 누군가에게 빵을 주면 나는 빵이 없고 받은 사람은 빵이 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시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준만큼 나의 것은 사라지고 받은 상대는 내가 준 것을 갖고 있다. 바로 이것이 세상 이치이다. 경제학이 궁극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희소성”이다. 이 용어는 인간의 제한된 자원을 분배하는 데에 생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자원이 충분.. 2021. 4. 1.
콩깍지가 씐 사랑 성서는 말한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그러나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은 더욱 복이 있다. 2021. 3. 26.
14 그분은 죽음으로 허다한 죄를 덮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 자기 자신을 놓고 그의 몸으로 그를 완전히 가리면 누구도 그 뒤에 숨긴 사람을 볼 수 없듯,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거룩한 몸(holy body)”으로 당신의 죄를 덮는다. 그때 정의가 불끈 성을 낸다. 그리하여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당신 역시 회개로 고통당한다. 당신이 회개로 고통당할 때, 당신은 더 많은 죄를 발견한다. 심지어 당신 밖에 있는 정의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 스스로를 학대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진실로 만족이, 어떤 만족이 존재한다. 만족을 만드는 자, 완전히 당신의 모든 죄를 덮고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 자, 정의가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그리하여 당신 속에 있는 회개가 보는 것을, 당신이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 자가 존재한다. 그분이 거룩한 몸으로.. 2019. 8. 30.
13 누가 허다한 죄를 덮는가?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설교자를 두고 있다. 이 설교자와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잔다. 이 설교자는 언제나 그의 주변에 있다. 언제나 그와 함께 있다. 그가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욕망”이라고 불리는 이 설교자가 있는 것이다. 이 욕망의 설교자에 굴복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본다. 반면, 모든 사람의 저 깊은 내면에 어디에서든 신중하게 현존하고 있는 비밀을주고받는 자가 있는 것도 확실하다. 그것은 양심이다. 사람은 아마도 세상에서 그의 죄를 숨기는 데에 성공할 수도 있다. 어리석게도 죄를 숨기는 데에 성공한 것을 기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정직해진다면, 그가 그 죄들을 드러낼 만한 용기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통탄할 만한 약점이요, 비겁이었다는 것을 .. 2019. 8. 28.
12 용서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우리는 그동안 침묵과 관대한 해석이 어떻게 죄를 덮는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침묵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 해도 실제로 어떤 죄도 제거하지는 못한다. 관대한 해석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죄의 양을 약간 감소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용서는 확실히 죄를 제거한다. 용서는 죄를 제거하는 가장 치명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이전에 “창조의 허다함”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하나님의 만드신 창조물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것을 다 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 우주의 별들부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작은 세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다양한가! 이런 창조의 다양성을 발견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고 찬양받을 만한 일이지만, 용서와 허다한 죄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 특징이 완전히 다르다. 용서는 허다한 죄를 덥고 용서받은 자의 죄를 제거.. 2019. 8. 19.
11 관대한 해석으로 허다한 죄를 덮는다 예전에 제주도 올레길 살인사건 기사가 생각이 난다. 그 뉴스 기사에 따르면, 살인자의 어머니는 “그 아이는 평생 나를 위해 살아왔다”며 범행 사실을 믿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심지어는 이웃 주민들도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15년 전쯤 원양어선을 타면서 고생해 번 돈을 내 암 수술비에 다 쓰려하기에 말렸더니 ‘돌아가시더라도 수술은 해보고 돌아가셔야 한다’며 나를 수술시켜 이렇게 살 수 있게 해줬다”며 눈물을 훔쳤다고 전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 살인자의 엄마가 감옥에 갇힌 아들을 찾아간다. 아들 면회를 요청하고 아들을 만나며 말한다. “우리 아들은 그런 아들 아녀. 절대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지. 그렇지?” 모든 사.. 2019.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