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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진리

03 진리를 아는 것은 진리로 사는 것이다!

by 엉클창 2019. 7. 3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진리를 아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객관적인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 그래서 이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일까요? 지금 이 글은 여러분에게 말씀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진리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걸까요? 

아니, 전혀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라면, 진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답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답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진리는 단순하지만 또한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진리는 아이들도 이해할만큼 단순한 것도 사실이지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고차원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빌라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잡혀가시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것이 얼마나 멍청한 질문입니까? 왜냐하면 이 질문은 마치 “답안”을 들고 답을 물어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삶, 그분의 행적, 지금까지 살아오셨던 그분 전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그런 현존이 빌라도 앞에 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빌라도 같을 때가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빌라도처럼 진리를 무언가 아는 지식으로 다루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 학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리가 그렇게 객관적인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걸까요? 주님께서 “내가 진리요”라고 말씀실 때, 그분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분의 삶과 그분이 걸어온 길 자체가 진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진리로 사는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면서 친히 삶으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바로 그 삶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똑같이 그분의 삶을 살아 낼 때, 그분의 길을 가는 것이고 진리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분의 길을 걷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가 그분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더 엄밀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신앙의 축복은 원하면서 그분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원치 않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길을 간다는 것은 고달픈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신앙생활의 축복을 받기 원하면서 그분의 제자됨을 원치 않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흡혈귀들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진리로 사는 문제다

진리는 진리로 살면서 알게 되는 것이지 알고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진리로 사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것이 진리로 사는 것에서 분리된다면, 그래서 객관적인 지식이 되어 버린다면 이것이 거짓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겁니다. 만약 주님께서 진리로 살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결코 진리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리로 사는 것과 진리로 아는 것의 분리는 가장 큰 타락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술에 취하게 되는 겁니다. 마치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행한 것처럼 되어 술에 취해 버린 것이지만 정작 자신은 술에 취했다는 것을 모릅니다. 

 

  • 여러분은 진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리로 살 때에만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에 계신 것이 아니라, 현재에 여러분들에게 현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여러분들이 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실 겁니다. 

  • 여러분은 그분을 닮아 가는 삶에 얼마나 진지합니까? 아니면,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 축복만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진리로 사는 문제에 대하여 진지해졌다면, 아마도 다음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즉, 술 취함과 술 깸에 대한 기독교와 세상의 사고 방식입니다. 세상이 술 깼다는 기준과 기독교가 술 깼다는 기준은 확실히 그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세상이 얼마나 술 취해 있는지 보여줄 작정이며, 적지 않게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술 취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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