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르케고르의 이 일기(NB:73, Pap. VII1 A186)의 핵심 내용과 해석
이 일기에서 키르케고르는 현대 자연과학(특히 생리학)의 문제점과 신앙 및 윤리의 관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의 논지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키르케고르의 과학 비판: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호기심이다.
키르케고르는 현대 과학, 특히 자연과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curiosity)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다고 해서 의식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기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오히려 코믹한 일이다.
📌 주요 예시:
- “나는 의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육안으로 볼 수 없다.” → 이는 단순하고 적절한 진술이다.
- 그러나 “현미경으로 계속 들여다봐도 의식을 볼 수 없다.” → 이건 코믹하다.
- 즉, 과학이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착각이다.
- 결론: 자연과학이 기적을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오히려 기적의 불가해성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2. 과학과 신앙: “과학이 하나님께 인도한다고 믿는 것은 위선이다”
과학을 통해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선이다. 자연과학자는 신학적 설명을 거부하지만, 과학이 신앙보다 우월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태도이다. 신적 진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가장 지혜로운 자조차 단순한 자와 동일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 핵심 요점:
- 자연과학은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 진정한 신앙은 과학적 증명에 의존하지 않으며, 오히려 ‘소크라테스적 무지’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 괴테는 종교적 정신 없이, 이교도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활용했기에 문제가 있다.
결론: 신앙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며, 단순한 무지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3. 생리학(의식 연구)에 대한 비판: “의식을 연구하는 것은 궤변이다”
키르케고르는 생리학이 **“의식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연구하는 방식 자체를 비판한다. 의식이 무의식에서 발생하는 과정은 ‘기적’과도 같은데, 과학은 이를 설명할 수 없으면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 주요 논점:
- 생리학은 “의식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설명하려 하지만, 결국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만 증명할 뿐이다.
- “무의식에서 의식이 어떻게 나오는가?”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다.
- 그러나 생리학자들은 이것을 마치 점진적 변화(almahlig)처럼 설명하려 한다.
- 그러나 이 점진성 자체가 과학적 논리 속에서 “질적 도약”(Leap)을 숨기려는 궤변이다.
결론: 의식의 발생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결국 이것은 기적에 대한 논의로 귀결된다.
4. 헤겔의 내면과 외면 변증법 비판
키르케고르는 헤겔 철학이 ‘내면(본질)과 외면(현상)’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헤겔 변증법에 따르면, “외면은 곧 내면이고, 내면은 곧 외면이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런 논리를 통해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생리학적 현상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 헤겔과 생리학 비판 연결:
- 헤겔주의는 **“내면(의식)은 외면(생리적 변화)의 산물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 따라서, 의식은 단순한 생리학적 과정이며, 기적적인 것이 아니다.
- 키르케고르는 이런 논리를 거부하며, 의식이 단순한 생물학적 산물이 아니라, 신적 차원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결론: 헤겔 철학과 생리학적 연구는 인간 정신을 단순한 물질적 과정으로 축소시켜, 신적 차원을 제거하려 한다.
5. “진정한 신앙은 오직 믿음뿐이다.”
과학이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될 뿐이라면, 과학은 결국 쓸모없다. 진정한 신앙은 단순한 확신에서 나온다. 즉, “믿으라! 그러니 믿으라!” 이 신앙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 신뢰’로 존재한다.
📌 신앙과 윤리적 결단:
- “사람의 생명을 몇 년 동안 연장하는 의학은 농담이다.”
- 진정한 진지함은 ‘축복받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 결론: 결국 신앙은 과학으로 증명될 수 없으며, 오직 믿음만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확신이다.
6. 최종 결론: “과학은 인간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
자연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일 뿐이다. 생리학은 의식을 연구하지만, 오히려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만 증명할 뿐이다. 헤겔 철학과 과학주의는 신앙을 철학적 개념과 생리적 과정으로 환원하려 하지만, 이는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패한다. 진정한 신앙은 오직 단순한 신뢰와 확신 속에서 존재한다. 즉,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이 신앙을 통해 경험하는 ‘기적’과 ‘의식의 탄생’은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과학이 신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만하며, 오직 단순한 믿음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 최종 정리: 키르케고르의 일기 핵심 요점
-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하다.
- 현미경을 통해 의식을 발견할 수 없으며, 기적을 설명하려는 과학은 결국 기적을 증명할 뿐이다.
- 헤겔 철학과 생리학은 인간 정신을 단순한 물질적 과정으로 축소하려 하지만, 이는 신적 차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 진정한 신앙은 과학적 증명과 무관하며, 단순한 확신 속에서 존재한다.
- 의학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진지함은 ‘축복받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 결론: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신앙이 주는 절대적 확신과 기적의 본질은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신앙은 오직 단순한 확신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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