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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인문학

키르케고르의 이 일기(NB:151, Pap. VIII1 A 39, 1847년)의 의도와 핵심 내용

by 엉클창 2025. 3. 11.

NB:151, Pap. VIII1 A 39, 1847년, JP: 2716

야이로의 딸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는가?

“이것은 기적이며,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면
“때때로 의학이 탁월한 방식으로 성공할 때가 있으며, 때때로 이와 같은 놀라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즉, “야이로의 딸의 소생이 기적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기적이 아닌 것에 호소해야 하는가?”

아니, 그보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과연 누구의 기쁨이 가장 아름답고, 하나님께 가장 기쁘게 받아들여지는가?
기적을 통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사람(여기서는 야이로)인가?
아니면, 조용한 아픔 속에서 거부된 소원의 고통을 견디면서도, 특별한 기쁨을 누린 사람과 함께 온유한 감동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인가?

과연 누구의 기쁨이 가장 복된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의 아픔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이 속하는 더 완전한 존재(fuldkomnere Tilværelse)에 대한
상상 속에서 경건하게 다시 세워지는 사람인가?

과연 누가 시인의 노래를 더 가치 있게 듣는가?
시인이 노래하는 것을 소유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완전히 거부된 것이 아니라,
시인의 노래에 의해 진정으로 감동을 받은 사람인가?


📌 키르케고르의 이 일기(NB:151, Pap. VIII1 A 39, 1847년)의 의도와 핵심 내용

이 일기에서 키르케고르는 기적과 신앙의 문제를 기존의 단순한 논리(기적 vs. 비기적)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의 기쁨과,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신앙 속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의 차이를 깊이 성찰한다.

1. 기적을 바라보는 태도

(1)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까?
(2) 아니면, 의학적 성공과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기적과 같다고 해야 할까?
(3)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기적이 아닌 것(과학, 심리학 등)에 호소해야 할까?

📌 키르케고르는 이런 질문들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기적이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않느냐를 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인간의 신앙과 태도이다.

 


2. 더 큰 기쁨은 무엇인가?

“누구의 기쁨이 더 복된 것인가?”

📌 키르케고르는 두 가지 기쁨을 비교한다.
(1) 기적이 일어나서 소원이 이루어진 사람의 기쁨 → 야이로처럼 딸이 살아난 경우.
(2)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타인의 기적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의 기쁨→ 자신의 소원이 거부되었음에도, 기적을 경험한 사람과 함께 기뻐하는 경우.

📌 그럼,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기쁨인가?
첫 번째 기쁨(야이로처럼 기적을 경험한 경우)은 분명한 기쁨이다.
그러나 두 번째 기쁨(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타인의 기적을 보고 감동하는 경우)은 더 깊은 신앙의 기쁨이다.
이 두 번째 기쁨이 더 신앙적이며,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는 기쁨이다. 즉, 키르케고르는 단순히 기적이 ‘일어난 것’보다, 기적이 없더라도 신앙 속에서 평안과 기쁨을 찾는 것이 더 완전한 신앙의 길이라고 본다.


3. 기적이 없는 자가 경험하는 더 깊은 신앙의 길

기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즉각적인 기쁨을 얻지만, 그것이 참된 신앙의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기적이 거부되었지만, 그것을 통해 더 높은 경건함에 이르는 사람이 더 큰 신앙을 갖게 된다.

📌 야이로는 딸이 살아났기 때문에 기뻐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타인의 기적을 보며 더 깊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의 기쁨은 더 복되다. 그는 더 높은 신앙의 단계로 인도된다. 즉, 기적이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없을 때에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4. 시인의 노래 비유: 기적이 없는 자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시인의 노래를 가장 가치 있게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노래 속에서 묘사된 것을 소유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노래를 통해 감동을 받은 사람인가?

📌 키르케고르는 후자가 더 깊은 감동을 경험한다고 본다. 노래는 어떤 사물을 직접 주지 않지만, 그것을 경험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기적도 마찬가지다. 직접 경험한 사람보다, 타인의 기적을 보며 신앙적으로 감동하는 사람이 더 깊은 이해를 갖는다. 즉, 신앙은 ‘기적을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기적이 없어도 감동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최종 결론: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의 태도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기적이 없어도 신앙을 유지하며 타인의 기적을 보고 감동하는 것이 더 완전한 신앙이다. 기적이 없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 속에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더 깊은 경건함을 가진다. 즉, 키르케고르는 “기적 vs. 비기적”의 논쟁이 아니라, 기적이 없더라도 신앙 속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더 성숙한 영적 단계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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