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 Christi Opfart til Høiheden begynder Parenthesens Indhold, og med hans Gjenkomst sluttes den”
(“그리스도의 높으신 곳으로의 승천과 함께 괄호의 내용이 시작되며, 그분의 재림과 함께 그것은 닫힌다.”)
이 표현이 사도행전 1장 9–11절의 그리스도 승천과 재림 약속 장면을 직접적으로 참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주석 번역 (경어체)
“그리스도의 높으신 곳으로의 승천과 함께 괄호의 내용이 시작되며, 그분의 재림과 함께 그것은 닫힌다”는 진술은 사도행전 1장 9절부터 1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승천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제자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께서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있을 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심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 개역개정)
🔍 해설 (비경어체)
이 장면은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교회 존재의 시공간적 틀을 설명해 주는 신학적 비유 구조의 원천이다. 즉, 다음과 같은 시간적-존재론적 괄호 구조가 형성된다:
시간 사건 | 신학적 의미 | 실존적 의미 |
그리스도의 승천 |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 본보기는 사라졌으나 명령은 남아 있음 → 시험의 시간 시작 |
교회의 시간 (괄호) | 속죄는 완성되었으나 심판은 유보됨 | 참된 신앙은 그 부재 속에서 실존적으로 책임지는 방식 |
그리스도의 재림 | 궁극적 심판과 완성 | 괄호가 닫히며, 존재의 진실이 심판됨 |
이 “괄호(parenthesen)”라는 개념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키르케고르가 교회의 실존을 규정짓는 종말론적-책임적 시간으로 읽는 해석틀이다. 교회는 승천 이후 재림 이전까지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시험당하는 시간”이다.
📌 연결된 신학 구조
성경 본문 | 키르케고르적 해석 |
사도행전 1:9 | 예수의 부재 → 신앙은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없음 |
사도행전 1:10 | 제자들은 여전히 “위”를 바라봄 → 물리적 신앙의 유혹 |
사도행전 1:11 | “그가 다시 오시리라” → 시험과 심판을 내포한 재림 약속 |
“괄호의 시간” | 승천(시작) — 재림(종결) 사이의 시간 = 실존의 책임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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