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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콩깍지가씐사랑

01 사랑은 아름답고 복수는 달콤하다!

by 엉클창 2019. 7. 19.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운 적이 있다. 아버지는 포도 농사를 지으셨다. 포도열매가 잘 맺으려면 거름을 주어야 한다. 여러 가지 종류가 거름으로 쓰이지만 특별히 아버지는 돼지 똥이나 소똥을 사용하셨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똥을 포도밭의 옆에 갖다 놓고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포장을 덮어 놓는다. 그리고 잘 썩을 때까지 묵히기 시작한다. 일정시간이 흘러가면 질 좋은 퇴비가 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썩는 냄새는 너무 심하다. 거름에 포장을 덮었다고 해서 그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똥이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을까?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도 마치 거름과 같은 것은 아닐까?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었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죄는 여전히 남게 된다. 인간이 지은 죄가 있는 곳은 정말이지 똥보다도 더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법이다.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면 얼마나 좋을까? 

허다한 죄가 넘쳐나는 곳에서는 사라질 수 없는 냄새, 진저리나는 냄새가 난다. 그래서 그 곳에 가기 싫지만 바로 그 곳이 우리의 삶의 터전인 경우가 허다하다. 매일 거름 탕에서 사는 것과 같다. 그때 얼마나 삶을 떠나고 싶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 삶의 현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이때, 사랑은 죄를 덮음과 동시에 냄새도 제거할 수 있을까? 사랑은 진저리나는 냄새를 향긋한 냄새로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죄로 썩어가는 세상에 죄로 인한 냄새 대신에 사랑은 아름다운 향기를 피울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냄새를 제거하는 미생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냄새가 고약한 거름에도 이 미생물을 살포하고 나면 썩는 냄새가 제거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미생물이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 죄를 덮는다고 할 때에는 사랑이 냄새도 제거해야 하지만 아름다운 향기를 피워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을까?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끔찍한 범죄들이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가? 사랑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랑을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기도 한다. 특히 이와 같은 일들은 남녀 간의 사랑에서는 비일비재한 것 같다. 대부분의 영화 혹은 드라마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사랑도 범죄, 사기, 애증, 살인 등에 관련된 내용들과 연관되어 있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랑의 애증관계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혹은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변질된 사랑의 이야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오직 단 하나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세상 사람들도 사랑을 찬양하고 그것의 아름다움과 능력을 찬양할 줄 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은 다른 것으로 변질 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끔찍한 복수의 사건으로 변하는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비극을 우리는 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시대의 비극이란 사랑이 곧 원수로 변한다는 것이다. 통계로 보아도 대다수의 살인이 온갖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 

 

“사랑은 아름답고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복수 달콤하고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달콤하다.”

 

사랑과 영원에 대한 세속적 생각은 너무나 빈약해서 이 땅에서 작용하고 있는 사리사욕을 본다. 세속적 생각은 인간에게 사랑의 기쁨을 주었던 같은 능력이 복수의 편에도 숨겨져 있다는 것을 믿는다. 세상은 사랑의 기쁨을 보고 있지만 복수의 달콤함도 즐긴다. 세상에서 사랑과 복수는 같은 능력일 뿐이다. 

그때 복수는 세상의 사랑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복수는 즐겁다. 아주 유쾌하다. 마치 복수는 그동안에 쌓여 있던 앙금을 다 날려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복수(앙갚음)는 불안을 내어 쫓지 못한다. 복수는 그것을 망각할 뿐이다. 따라서 복수를 감행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

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다. 복수의 자식은 복수일 뿐이다. 복수하는 사람은 아마도 복수 당할 것을 염려해야만 할 것이다. 

그때, 사랑이 평안 속에 잠을 자고 있는 반면, 복수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복수는 쉬지 않는다. 복수는 밤에도 이를 갈며 잠을 청한다. 복수는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잠이 아니라 여전히 일이다. 

분노는 자신의 기회를 기다리며 비밀히 파수꾼이 되어 있었다. 분노는 언제든지 폭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때, 분노는 어떤 파수꾼보다 더 섬세하다. 분노는 절대로 자신의 기회를 놓지는 법이 없다. 분노와 복수가 한 편이 되어 완전한 잔인함으로 터져버릴 수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그때, 복수는 금지된 달콤함을 갈망한다. 복수는 달콤함을 세상의 영혼들을 위해 채우고 있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복수의 달콤함을 잘 안다. 또한 합법적으로 복수의 권세를 행할 줄도 안다. 

어떤 복수도 정당화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모든 복수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합리적이다. 사람들이 복수의 권세를 행할 때, 마치 저 하늘의 권세를 가진 하늘의 가족인 것처럼 느낀다. 그렇다. 그들은 저 하늘의 권세를 대행하는 자처럼 복수를 감행한다.

 

복수가 달콤함을 즐길 때, 그때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은 어떻게 죄를 덮을 것인가? 어떻게 저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고 사랑의 향기를 풍길 수 있을까?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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