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틸리히는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있다면, 셸링과 독일의 루터파 저술가인 마르틴 캘러다. Roman Kralik에 의하면, 무엇보다 틸리히는 그의 철학적 체계를 거의 셸링과 키르케고르에게 빚지고 있다. 틸리히는 셸링과 키르케고르를, 심지어 마르크스까지 연결시킨다.
Kralik은 틸리히가 1905년에 Halle 대학에 있을 당시 키르케고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틸리히는 키르케고르를 공부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철학적 통찰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밀한 부분까지 다룬 키르케고르의 경건을 감탄했다고 한다.
키르케고르는 마르크스와 더불어 헤겔 철학을 부정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키르케고르에게서 물리적이고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정신과 실재의 관계를 세계의 진화적 과정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헤겔 철학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덴마크 사회에 대한 이런 비판은 좌파로 기울었던 틸리히에게 영향을 주었다.
Kralik는 틸리히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키르케고르를 더 잘 이해했다고 한다. 키르케고르와 틸리히의 작품들은 복잡한 세계에 대한 내면적인 싸움을 반영하고 있다. 둘 다 그 시대에 도전을 주고 있고, 독자들을 같은 관점을 같도록 끌어들이고 있다.
틸리히는 독일 사람이었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시기가 있었다. 1933년부터 1965년의 시기였다. 이 시기 동안 틸리히는 많은 글을 썼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다. 대부분 키르케고르를 인용하는 사람들은 각주도 달지 않고, 출처도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후대에 연구자들은 이를 다 밝혀낸다. 요즘으로 말하면, 다 표절이다.
키르케고르는 어떨까? 각주 달고 글을 쓴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는 성경구절조차도 달지 않았다. 번역서를 내면서 각주로 추가한 성경 구절들과 자료들은 후대 연구자들의 노력의 결과다. 어쨌든 이 시기동안 틸리히는 미국 사회에 키르케고르를 소개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 라우리나 스웬슨이 영어로 번역한 키르케고르의 글이 있었는데, 영어 번역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은 틸리히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틸리히의 「존재의 용기」는 한 마디로, 불안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2장은 존재론적 불안에 대한 분석이다. 존재론적 불안은 심리 치료로도 없앨 수 없다. 이 불안은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 실존의 근본적 구조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지금까지 간단하게 키르케고르와 틸리히를 살펴보았다. 한국의 신학계에 틸리히는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공부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틸리히? 한국에서 역시 거의 이단처럼 생각하는 신학자, 목사가 있다! 적어도 이단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별로 달갑지 않다. 그런 그의 신학의 정점에 키르케고르와 셸링이 있는 것만으로도 키르케고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 마디로 말해서, 희망은 지금 공부하는 신학생에게 있다. 폭넓게 공부하시고, 과거의 학문에 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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