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생각 속에는 키르케고르가 녹아들어가 있다. 그냥 공부하는 과정 가운데 거쳐가는 단계가 아니라, 그의 사상은 키르케고르의 생각이다. 그의 말은 키르케고르의 “나팔(reveille)”이다. McCormack의 주장에 따르면, 칼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을 쓰기 전에 “그리스도교의 훈련” “순간” 그 외에 키르케고르의 일기와 기록물들을 읽었다는 것이다. 칼 바르트는 아마도 1920년 봄에서 1921년 겨울까지 읽었던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는 “비학문적 후서”를 읽었다고 한다.
McCormack에 따르면, 칼 바르트의 「로마서」에 영향을 끼친 책이 있다면 “그리스도교의 훈련”이었다. 역설로서 그리스도, 동시대성의 문제, 무한한 질적 차이, 신적 “미행”으로서의 육화와 같은 개념들이 로마서 주석에 들어 있다. 심지어는 “직접 전달의 불가능성”과 같은 개념들도 녹아들어가 있다.
첫째, 칼 바르트는 키르케고르를 그 당시 기독교에 소개하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한국에 소개되는 데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다. 일단 한국에서는 아직도 칼 바르트를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과 목사님들이 있다. 기독교계에서 키르케고르의 책이 불온서적이 되는 이유는 이런 학자들과 더불어 비판받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칼 바르트의 키르케고르의 오해이다. 칼 바르트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그와 동시대에 강의를 하며 키르케고르를 소개 했던 Hirsch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괴팅겐에서 강의했던 역사 신학자이다. 1921년에 바르트와 논쟁을 즐겼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때 키르케고르를 읽었던 사람들의 평가는 키르케고르가 “비합리주의자”였고, “루터교 신앙의 파괴자”였고, “철저하게 신앙지상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또한 키르케고르의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고 모순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McKinnon은 이런 키르케고르를 “유령 키르케고르(the phantom Kierkegaard)”라고 비판한다. 그 당시에 키르케고르의 해석은 대표적인 오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키르케고르에 대한 오해는 한국 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 칼 바르트도 수용하기 어려운 판에, 키르케고르는 진입이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McKinnon은 키르케고르를 셋으로 분류한다. “권위의 키르케고르,” “진짜 키르케고르,” “유령 키르케고르.” 그는 역설의 개념을 이 세 측면으로 설명한다. 먼저, 「철학의 부스러기」, 「비학문적 후서」의 저자인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그는 권위의 키르케고르의 대변인이다. 그는 “자칭 그리스도인”이다. 그에게 기독교는 역설이다. 그에게 기독교는 “논리적 모순”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가명의 저작 중에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작품만 읽은 사람들, 마치 기독교는 역설로 가득차고 비합리적인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건 “자칭 그리스도인”의 주장이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가명의 저자 요하네스 클리마쿠스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것은 기독교의 모습이 아닌데, 이런 주장을 그대로 기독교라고 설명하는 후대의 학자들이 있으니 그게 문제다.
그렇다면, 진짜 키르케고르는 어떨까? 진짜 키르케고르는 자칭 그리스도인이 기독교를 역설로 간주한다 해도, 그런 주장은 교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더 이상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한테? 진정한 믿음에 이른 자에게 기독교의 역설의 본질은 극복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화집을 읽으라는 것이다. 도대체 강화집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강화집이 거의 소개가 안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를 역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에 길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아마 이런 주장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역설에는 양면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McKinnon에 따르면, 19세기 초에 독일 학자들은 키르케고르의 해석에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키르케고르를 비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없는 사상가로 읽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칼 바르트, 허쉬, 에밀 부르너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이런 “유령 키르케고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결론. 문제는 이런 생각이 고착되어 더욱 키르케고르를 기독교계에 소개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학을 공부하는 차세대 전도사님들과 목사님들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키르케고르를 소개하고자 열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같이 연합 전선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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