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간과하지 맙시다!!!
부탁드립니다.
맬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영화에 현혹되지 마시가 바랍니다.
그런 영화는 기독교의 진정한 본질을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영화에 열광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 들어 글을 씁니다.
어째서 맬깁슨의 영화 <패선 오브 크라이스트>가 기독교를 담지 못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담지 못했을 뿐더러,
그분의 죽음을 유일한 죽음이었다는 참된 의미를 담지 못했습니다.
순교자들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럼 순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 사람들일까요?
순교를 당한 제자들부터, 그 이후의 모든 세대에 신앙으로 죽음에 동참한 모든 사람들만 예로 들어봅시다. 심지어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전합니다. 그럼 거꾸로 매달려 죽은 베드로는 예수님보다 더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겁니까?
저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순교자들?
순교자들이 아무리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단 한 명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들은 스데반이 기쁘게 죽음을 맞이 한 것처럼,
자신의 죽음을 기쁘게 맞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
유대인 랍비 중에는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왜 주님은 하필,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하며
절망적인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순교자들이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세상이 모두 그를 버려도,
모든 사람이 그들을 미워해도,
하나님 한 분만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죽음을 담대히 받아들인 이유는 정말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정말로!
세상에서도 버림받고, 하나님께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죽음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인간 중에 누가 이 길을 갈 수 있습니까?
과연 누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통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탄이 조롱합니다.
“야, 네가 하나님과 하나라며? 그런데 하나님이 널 버려? 그럼 넌 하나님의 아들도 아닌 것 같은데?”
인간은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 이런 길을 가지 않기 위해,
인간이 이렇게 심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하지 않기 위해,
유일하게 치명상을 입으신 이 “죽음”의 의미를 간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게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이 의미를 조금이라도 누락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다른 신학적 논쟁은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으니, 그냥 그분의 죽음의 의미를 이 정도로만 새깁니다.
맬깁슨 영화가 아무리 육체적인 고통, 저런 가학적 고통을 강조한다 해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십자가를 지고 죽어도,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죽음을 맞이해도 절대로 주님의 죽음을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목회자로 살아가는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주님의 가신 길을 되새기며 말씀으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학과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동주의 시 "팔복" 해석 (0) | 2021.08.04 |
---|---|
윤동주와 키르케고르 (0) | 2021.07.28 |
존재론과 윤리학: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하이데거 비판에 대한 제고찰 (0) | 2021.01.22 |
헤겔의 논리학 일부(영역본) (0) | 2020.10.22 |
카리스 아카데미 후원 (0) | 2020.09.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