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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본회퍼의 죄성과 키르케고르
기독교 신학이 계시를 전제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본회퍼의 죄의 개념에 반영됩니다. 만약 계시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면,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죄성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보기1 Cf., for example, Bonhoeffer, Barcelona, Berlin, Amerika 1928–1931,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10, pp. 314–15. (Barcelona, Berlin, New York: 1928–1931, in Dietrich Bonhoeffer Works, vol. 10, pp. 352–3.)] 1932~1933년 신학적 심리학 세미나에서 본회퍼는 절망의 모티브를 사용하여 이 죄성을 분석합니다.[#보기2 Cf. Dietrich Bonhoeffer, Berlin 1932–1933,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12, pp. 194–5.]
루터는 절망을 인간이 현재뿐 아니라 다시 경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키르케고르는 절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절망을 적용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무의식적 절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절망은 “인간의 실존”입니다.[#보기3 Cf. Dietrich Bonhoeffer, Berlin 1932–1933,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12, pp. 195.]
본회퍼의 죄에 대한 자신의 개념화는 다음에 나오는 것과 매우 가깝습니다. 즉, 그에게 죄란 범법 행위일 뿐만 아니라 존재(being)입니다. 물론 죄를 인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범법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죄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존재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보기4 Cf. Dietrich Bonhoeffer, Berlin 1932–1933,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12, pp. 196.] 다르게 말하면, 죄는 인간에게 실존하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키르케고르처럼 본회퍼는 죄가 세상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보기5 Cf. Bonhoeffer, Schöpfung und Fall, p. 59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3, p. 97; Creation and Fall, in Dietrich Bonhoeffer Works, vol. 3, p. 104) with SKS 4, 348–9 / CA, 41–2, where Kierkegaard emphasizes that sin cannot be explained through something else. Cf. also Schöpfung und Fall, pp. 7ff.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3, pp. 25ff.; Creation and Fall, vol. 3, pp. 25ff.) on the nature of the beginning with SKS 11, 182 / SUD, 67–8.] 선이나 악을 행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이고, 여기에서 자유를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은 타락의 이야기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해석입니다.[#보기6 Cf. Bonhoeffer, Schöpfung und Fall, p. 58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3, p. 96; Creation and Fall, in Dietrich Bonhoeffer Works, vol. 3, p. 104) with SKS 4, 415 / CA, 112–13.] 타락 전의 상황은 모호합니다.[#보기7 Cf. Bonhoeffer, Schöpfung und Fall, p. 58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3, p. 97; Creation and Fall, in Dietrich Bonhoeffer Works, vol. 3, p. 104) with, for example, SKS 4, 348–9 / CA, 41–2.]
키르케고르와 본회퍼 모두에게, 계시의 전제와 실존적인 것으로서 이에 상응하는 죄의 개념으로부터 어떤 철학적 관점이 생깁니다.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키르케고르에게, 기독교적 ‘죄의 개념’은 계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회개에 이르는 죄는 도덕, 양심, 혹은 법적인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죄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진정한 자기 이해는 불가능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서지 않는 한, 다시 말해 계시가 없다면 진정한 자기 이해는 없습니다. 본회퍼 역시 이에 대하여 관심이 같습니다.
따라서 본회퍼는 모든 철학적 개념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죠.[#보기8 Dietrich Bonhoeffer, Akt und Sein. Transzendentalphilosophie und Ontologie in der systematischen Theologie, Gütersloh: Bertelsmann 1931 (Beiträge zur Förderung christlicher Theologie, vol. 34), p. 11 (in Dietrich Bonhoeffer Werke, vol. 2, p. 25–6; English translation: Act and Being: Transcendental Philosophy and Ontology in Systematic Theology, in Dietrich Bonhoeffer Works, vol. 2, p. 31).] 이런 계시와 이에 상응하는 죄의 개념을 논하지 않는 어떤 철학도 진정한 자기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을 테니까요. 결과적으로 본회퍼는 《산토룸 코뮈니오(Sanctorum Communio, 성도의 교제)》뿐만 아니라 《행위와 존재(Act and Being)》에 있어서도 많은 철학적 개념을 비판합니다. 관념론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 물론 그는 키르케고르를 지지합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자기 지식과 이해를 강조하였지만, 계시가 없는 자기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이 역시 확정적이지도 않고 잠정적 지식입니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데카르트 역시 잠정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자기 자신을 모든 지식에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만, 계시가 전제되지 않는 진정한 자기이해가 없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회퍼가 철학을 까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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