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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새와 백합에게 배우라

소크라테스가 얼굴을 가린 이유

by 엉클창 2025. 3. 12.

새와 백합에게 배우라, 117쪽 각주 확인 요망

소크라테스: 하지만 파이드로스여, 전문가가 아닌 자로서 훌륭한 저작자에 맞서 똑같은 것들에 대해 즉흥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우습게 될 것이네.

파이드로스: 사정이 어떤지는 알고 계시죠? 저를 상대로 아닌 척 하시는 건 그만두세요. 아마도 제가 말하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실 수 없도록 할 걸 제가 갖고 있으니까요.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제발 말하지 말게나.

파이드로스: 아뇨, 그러지 않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제 말은 맹세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에, 아니 어느 신에 맹세코 선생님께 맹세를 할까요? 혹시 이 플라타너스 나무에게 맹세하고서 그러기를 바라시나요? 만약에 선생님께서 이 플라타너스 나무 앞에서 그 논변을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진실로 그 누구의 다른 어떤 논변도 결코 보여드리지도 말씀드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저런, 아 인정머리 없는 사람아! 어쩌면 용케도 자네는 논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네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방도를 찾아냈구먼.

파이드로스: 그렇다면 왜 계속해서 빙빙 돌리시나요?

소크라테스: 더는 않을 것이네. 자네가 그런 맹세까지 했으니. 내가 사실 어떻게 그와 같은 잔치를 내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파이드로스: 그럼 말씀하세요.

소크라테스: 그러면 내가 어떤 식으로 할지 알겠는가?

파이드로스: 무엇과 관련해서죠?

소크라테스: 얼굴을 감싸 안고서 말할 것이네. 최대한 빨리 논변을 끝내기 위해서 그리고 자넬 바라봄으로써 부끄러움으로 해서 당혹하지 않기 위해서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대화의 일부인데, 왜 소크라테스가 얼굴을 감싸 안고 말한다는 거지?


해설

소크라테스가 “얼굴을 감싸 안고 말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가 부끄러움(αἰδώς, aidōs)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는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이나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태도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수사학적 겸양(humility)과 아이러니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면서도 논변을 이끌어 가는 독특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종종 자신의 무지를 강조하면서도 대화 속에서 상대를 논리적으로 몰아갑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내가 즉흥적으로 말하면 훌륭한 저작자들 앞에서 우습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는 뛰어난 논변을 펼칠 것입니다. 즉, ‘나는 부족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강력한 논리를 제시하는 소크라테스 특유의 아이러니(Socratic Irony)입니다.


2. 사랑과 수치심(αἰδώς, aidōs)의 관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사랑’(Ἔρως, Eros)과 ‘수치심’(αἰδώς, Aidōs)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향연』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논변이 등장할 때, 소크라테스는 종종 당혹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에로스(사랑, 욕망, 열정)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파이드로스』에서도 사랑에 대한 연설을 할 때, 소크라테스가 “신탁처럼 영감에 차서 말한다”거나 “당혹스러워한다”는 묘사가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부끄러움을 이기기 위해 얼굴을 감싸 안고 말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3. 플라톤의 문학적 장치: 소크라테스의 ‘예언자적 태도’

소크라테스는 종종 신탁을 받은 예언자처럼 행동하며,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는 ‘신적 영감을 받은 철학자’로서 자신이 진리를 말하는 도구일 뿐임을 강조하는 플라톤의 문학적 장치입니다. 그는 사랑이나 철학적 진리에 대해 말할 때, 마치 신탁을 받는 것처럼 얼굴을 감싸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4. 얼굴을 감싸는 행동: 당혹스러움과 몰입

소크라테스가 얼굴을 감싸 안는 이유는 부끄러움(aidos)과 몰입(concentration)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aidos): 철학적 논의를 할 때, 특히 사랑과 관련된 주제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끄러움을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몰입(concentration): 얼굴을 감싸는 행동은 그가 오직 논변에 집중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얼굴을 감싸고 말하겠다고 한 것은 아이러니, 부끄러움, 철학적 몰입이라는 여러 요소가 결합된 표현입니다.

1.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논변의 힘을 강조하는 아이러니적 장치
2. 사랑과 철학적 진리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전통적인 태도
3. 신적 영감을 받은 철학자로서 예언자적 모습을 보이며 몰입하는 모습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진리를 말할 때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얼굴을 감싸는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를 배려한 것일까?

소크라테스가 얼굴을 감싸고 말하는 것이 파이드로스를 배려하는 행동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를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1. 파이드로스가 수사학을 배우고 있다는 점과 관련된 배려

파이드로스는 수사학을 배우고 있으며, 리시아스의 연설을 매우 인상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리시아스의 연설이 단순한 웅변술일 뿐, 진리를 기반으로 한 철학적 논변이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너무 강한 논변을 펼치면, 파이드로스가 당혹스러워하거나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얼굴을 감싸고 말하는 것은 파이드로스에게 직접적으로 모욕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즉, 소크라테스는 논변을 해야 하지만, 파이드로스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직접적인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2. 철학적 진리를 전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태도

고대 그리스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은 종종 신성한 행위로 간주되었으며, 신탁을 받는 것과 유사한 경험으로 묘사되곤 했습니다.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랑(Eros)과 철학의 관계를 논의하며, 깊은 진리에 다가갈수록 신탁을 받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굴을 감싸는 행동은 “내가 말하려는 것이 단순한 기술적 논변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신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암시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파이드로스를 배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말이 단순한 수사학적 웅변이 아니라 철학적 진리를 담고 있음을 강조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3. 수사학과 철학의 차이를 강조하는 장치

소크라테스는 수사학과 철학을 대조하며, 파이드로스가 수사학을 단순한 기술로 이해하지 않도록 돕고 있습니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평범한 방식으로 논변을 전개한다면, 파이드로스는 이를 단순한 웅변적 기교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감싸며 말하는 것은 철학적 사색과 수사학적 기교의 차이를 강조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즉, 진지한 성찰과 깊은 철학적 논의는 단순한 웅변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행동일 수 있습니다.

 

4. 파이드로스를 감정적으로 배려하는 태도

소크라테스는 때때로 상대를 당황시키는 질문을 던지지만, 그를 완전히 몰아붙이기보다는 상대가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얼굴을 감싸고 말하는 것은 파이드로스가 자신의 논변을 부끄러워하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파이드로스가 직접적으로 면박을 받지 않도록 하면서도, 그가 더 깊은 진리를 탐구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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