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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죽음에 이르는 병

2) 영원한 것에 대하여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 해설

by 엉클창 2025. 6. 26.

 

죽음에 이르는 병, 2) 영원한 것에 대하여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 해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over와 om 둘 다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Selvet)가 이중적인 변증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절망의 낮은 단계들,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절망하는 사람 안에 있는 모호함이다. 절망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 때문에’(hvorover) 절망하는지는 매우 격정적으로 분명히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무엇에 대하여’(hvorom) 절망하고 있는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치유의 조건은 언제나 이 회개(Omvendelse)에 달려 있다. 그리고 순수하게 철학적인 차원에서라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에 대해’ 절망하는지를 완전히 의식한 채 절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점이 하나의 섬세한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절망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무의식적’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무의식은 단순한 심리학적 무의식이라기보다는, 실존적 망각 또는 진리로부터의 회피라는 철학적 개념에 가깝습니다.

 


 

원문 다시 요약해 보면:

 

“절망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hvorover) 절망하는지는 격정적으로 또렷하게 알고 있지만, 실제로 자신이 무엇에 대해(hvorom) 절망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한다.”

 

즉, 그는 자기 절망의 ‘겉모습’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절망이 자기 존재 전체에 걸려 있는 일, 다시 말해 영원한 자기 자신에 대한 포기라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말하는 ‘무의식’이란?

 

  •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하는 절망의 가장 낮은 형태는이것은 실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잃은 상태,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 바로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입니다.
  • 이런 상태에서 절망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됩니다.실제로는 존재의 본질적 근거(영원한 자기 자신, 하나님 안에서의 자아)를
  • 부정하고 있는 것—즉 영원한 것에 대한 절망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 자기는 그냥 ‘상황이 힘들다’, ‘삶이 불행하다’고만 생각하지만,

 


 

철학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자신이 무엇에 대해 절망하는지를 완전히 의식하면서 절망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기가 영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는 걸 ‘완전히’ 의식한다. 그는 더 이상 그 상태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회심(omvendelse) 또는 믿음으로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요약하자면:

 

  • 이 구절은 실존적 의미의 무의식적인 절망을 말합니다.
  • 겉으로는 이유를 알지만, 실제로는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진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 이 무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회심”, 즉 영원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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