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병, 2) 영원한 것에 대하여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 해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over와 om 둘 다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Selvet)가 이중적인 변증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절망의 낮은 단계들,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절망하는 사람 안에 있는 모호함이다. 절망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 때문에’(hvorover) 절망하는지는 매우 격정적으로 분명히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무엇에 대하여’(hvorom) 절망하고 있는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치유의 조건은 언제나 이 회개(Omvendelse)에 달려 있다. 그리고 순수하게 철학적인 차원에서라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에 대해’ 절망하는지를 완전히 의식한 채 절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점이 하나의 섬세한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절망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무의식적’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무의식은 단순한 심리학적 무의식이라기보다는, 실존적 망각 또는 진리로부터의 회피라는 철학적 개념에 가깝습니다.
원문 다시 요약해 보면:
“절망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hvorover) 절망하는지는 격정적으로 또렷하게 알고 있지만, 실제로 자신이 무엇에 대해(hvorom) 절망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한다.”
즉, 그는 자기 절망의 ‘겉모습’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절망이 자기 존재 전체에 걸려 있는 일, 다시 말해 영원한 자기 자신에 대한 포기라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말하는 ‘무의식’이란?
-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하는 절망의 가장 낮은 형태는이것은 실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잃은 상태,
- 곧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 바로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입니다.
- 이런 상태에서 절망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됩니다.실제로는 존재의 본질적 근거(영원한 자기 자신, 하나님 안에서의 자아)를
- 부정하고 있는 것—즉 영원한 것에 대한 절망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 자기는 그냥 ‘상황이 힘들다’, ‘삶이 불행하다’고만 생각하지만,
철학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자신이 무엇에 대해 절망하는지를 완전히 의식하면서 절망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기가 영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는 걸 ‘완전히’ 의식한다. 그는 더 이상 그 상태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회심(omvendelse) 또는 믿음으로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요약하자면:
- 이 구절은 실존적 의미의 무의식적인 절망을 말합니다.
- 겉으로는 이유를 알지만, 실제로는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진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 이 무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회심”, 즉 영원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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