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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이것이냐 저것이냐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by 엉클창 2025. 7. 2.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서문에서 빅터 에레미타가 “외적인 것(det Udvortes)은 곧 내적인 것(det Indvortes)”이라는 명제에 의심을 품고, 나아가 그 철학적 정식화 자체에 이단적(heretical)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단순한 논리적 이견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실존과 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론적, 신학적 비판이다.

 


 

1. 이 명제는 헤겔 변증법의 핵심 명제다

 

헤겔 철학에서

 

내면(Væsenet)은 외면(Fænomenet)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진리는 외적 현상과 일치하는 내적 본질이다.

 

이러한 전제는 진리는 개념의 전개 속에서 외적으로 드러나며, 결국 내면과 외면은 동일성 속에서 통일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이건 진리의 보편성과 체계성을 보장해주는 이성 중심의 형이상학이야.

 


 

2. 키르케고르가 거부한 이유:  실존적 진리는 ‘드러나지 않음’과 관련돼 있기 때문

 

키르케고르, 혹은 빅터 에레미타는 말한다.

 

“어쩌면 당신도 어떤 비밀을 간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기쁘거나 고통스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즉, 진짜 내면적인 것, 특히 실존적 진리는 그 자체로는 표현 불가능하거나 감추어진 것이라는 감각이 있다.

이건 단순한 심리학이 아니라, 신 앞에서의 고독한 실존, 죄의식, 믿음, 유혹, 고통, 부름 같은 것들이 결코 외면적으로 전적으로 동일화되지 않으며, 완전히 표현되지 않는다는 실존적 통찰이다.

 


 

3. 키르케고르에게 진리는 ‘계시(Aabenbarelse)’이지, ‘전개’가 아니다

 

그는 『철학의 부스러기』나 『결론 없는 비학문적 후서』 등에서

 

진리는 존재와 동시에 주어지는 것, 즉 계시라고 말한다. 이 계시는 반드시 역설(paradoks)이며, 외면으로 번역되지 않음, 혹은 번역되더라도 그 번역은 진리를 지운다는 긴장을 지닌다.

 

따라서,

 

“외적인 것이 곧 내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는 실존적 진리의 은폐성, 고독성, 유일성을 거세하는 체계적 오류가 되는 것이다.

 


 

4. 실존은 ‘비대칭’이고, 진리는 ‘선택’의 문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제목 자체가 말해주듯, 실존은 선택(Valg)의 문제이며, 그 선택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표현되지 않으며, 결과로만 증명되는 것이다. 그런데 “외적=내적”이라는 명제는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 채, 외형과 행위로서 이미 판단 가능한 상태를 전제한다. 즉, 고뇌, 유혹, 망설임, 침묵, 불안, 신앙의 역설 같은 실존의 핵심을 무효화시키는 명제가 된다.

 


 

요약하자면,

헤겔적 명제 키르케고르적 거부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과 동일하다 내면은 감추어지며, 외면은 결코 그 총체가 아니다
진리는 이성의 전개 속에서 드러난다 진리는 은폐되어 있으며, 계시되고, 선택되어야 한다
진리는 보편적이며 체계화된다 진리는 단독자(den Enkelte)의 실존적 사건이다
동일성의 변증법 불일치의 역설(paradoks)

 


이러한 철학적 긴장이 바로 실존주의의 탄생 지점이기도 하다.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철학적 언어를 넘어선 비밀, 고독, 침묵, 내면성, 실존의 비대칭성을 복원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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