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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정리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의 접촉

by 엉클창 2020. 2. 1.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이 의식에서 서로 접촉하기 때문이다."

det Evige og det Timelige berøre hinanden i en Bevidsthed
The eternal and the temporal touch each other in a consciousness.

 

요하네스 클리마쿠스는 철학의 부스러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야 순간이 문제가 된다. 이와 같은 순간은 독특한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눈 깜짝할 사이만큼 짧고 찰나적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다음 순간이 옮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며, 또한 영원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순간은 역시 특별한 이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때의 참이라고 부르자.1)

"때의 참"이라는 부분은 갈라디아서 4장 4-5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이 순간은 하나님의 경륜이 찼을 때의 순간이다. 곧,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이 순간은 새가 살아가는 순간과는 다르다. 이 순간은 영원으로 채워진 순간이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그림처럼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할 수 있지만 현재라는 시간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끊임 없는 흐름으로 되어 있는 순간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과거와 미래뿐으로, 현재는 선으로도 표시할 수 없는 순간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순간 속의 영원이란 인간의 이해에 따르면 이해 불가능하다. 어떻게 순간 속에 영원이 들어올 수 있는가? 이런 순간은 본질적으로 "실족"을 야기한다. 그래서 요하네스 클리마쿠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모든 실족은 본질적으로 순간에 대한 오해다. 이는 역설에 대한 실족이요, 결국 역설이 순간이다.2)

요하네스 클리마쿠스의 설명에 의하면, 그리스적 열정은 상기recollection에 집중하는 반면, 기독교적 열정은 순간에 집중된다.3) 이 순간은 키르케고르가 이야기하는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변증법적 통일이고, 기독교적 진리를 조우하는 순간이다. (더 추가 예정)

 

1) 다음을 참고하라. 쇠얀 키에르케고어, [철학의 부스러기] 표재명 역 (서울: 프리칭 아카데미, 2007), 36쪽.

2) Philosophical Fragment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5),51쪽.

3) 위의 책,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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