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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난으로부터의 도피

by 엉클창 2020. 6. 16.

 


세상에는 여러 배움이 있다. 지식, 기술, 예술, 음악,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배움을 실천할 수 있다. 가끔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나 어른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우리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모든 삶은 배움의 현장이다. 

공부하기 싫어 일찍 직업을 선택한 젊은이도 결국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어떤 일을 시작한다 해도 처음부터 배움이다. 심지어 아무 것도 배우기 싫다 해서 막노동을 한다 해도 그 안에는 십수년 동안 일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 “달인”이 있다. 

갓난아기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배움이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엄마가 말하는 말투, 몸짓 등을 보고 따라하게 된다. 아기는 모방이 천재다. 아기가 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보고 있는 어른은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의 놀이는 부모의 삶을 카피한 축소판이니까. 아기의 재롱은 한 마디로 순수한 배움의 결과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배우는 현장이다. 

먼저 이런 배움에는 언제나 두 가지 요소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매력적인요소요, 다른 하나는 단념하고 싶은 요소다. 배움이 매력적인 이유는 배움에도 일종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요, 단념하고 싶은 이유는 배움 자체가 고달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더 구체적으로 예전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역도선수 장미란이 역기 드는 법을 가르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역도의 달인에게 배운다는 것은 일종의 지름길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똑같이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큰 영광이겠지만 배움의 과정은 고통이다. 허구한 날 어마어마한 무게를 들어올려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성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그 배움에 있어 일종의 화가 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운다? 어쩌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왜 하겠는가?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고달픈 인생을 헤쳐나갈 수만 있다면, 아마 종교에는 입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고달픈 삶을 헤쳐나갈 힘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구원자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아마 기도실에 들어가면 언제나 다음과 같이 기도했을 것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나의 삶이 너무 고단합니다. 제발 삶 가운데 일어나는 고난을 제거해 주시고 그 사랑을 베푸시어 삶에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을 보라. 주님은 우리의 삶에 고난을 제거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의 근간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웠다는 것이다. 아마 주님은 저 기도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셨을 것이다. 

“아니, 고난은 제거할 수 없어. 고난은 우리의 선생이야. 내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운 것처럼 너도 나처럼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야 해. 고난 없이는 순종을 배울 수 없으니까.”

우리가 이런 배움에 분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난으로부터 구원해줄 분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구원은 원했지만 순종 배우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해보라. 아무 것도 배울 필요가 없는 분께서, 전지전능한 분께서 순종함을 배웠고 이를 통해 완전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을 넘어 분개하는 이유는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당할 때, 고난에서 건져내시지 않고 도대체 뭐하고 계셨냐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배움이란 이런 것이다. 고난을 통한 순종의 배움. 따라서 고난 없는 순종 없다. 순종 없는 구원도 불가능하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근간이 되실 뿐이니까. 순종은 믿음의 최고의 행위의 열매다. 다시 말해, 순종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그것은 믿음 안에 있다는 착각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고난은 믿는 자에게서 제거할 수 없다. 고난을 제거해달라는 기도는 한 마디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싫습니다”라는 기도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되면 고난은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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