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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샘

무엇이 지혜의 시작인가?

by 엉클창 2020. 9. 12.

 

☞ 함께 일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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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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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철학을 깊이 있게 공부했던 덴마크의 신학자 마르텐센은 “의심은 지혜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과학적 지식, 혹은 반성적 지식은 그 기반이 의심입니다. “정말로 지구는 평평한가? 그렇다면 왜 지평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세운다 해도, 이를 한 번 더 의심함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도 합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무언가를 의심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상을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아마 대부분 의심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에 동의하실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혜에 대하여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9장 10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맞는 것일까요? 의심이 지혜의 시작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이 지혜의 시작입니까?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데카르트가 필요합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의심을 철학의 방법론으로 삼은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왜 도대체 저런 명언을 남긴 걸까요? 그 이유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검증할 필요고 있었고, “모든 것을 의심한다”는 그의 방법론을 따르기 위한 과제가 저 명언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혹시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더 철저하게 의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어떤 점에서? 네, 기독교적으로 이해하자면, “생각하는 나 자신”조차 의심해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나 자신을 “가장 의심스러운 존재”로 다루는 겁니다. 더 정직한 자기 불신이 필요합니다.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가장 의심스러운 존재로 다룰 때, 그는 완전히 기반이 사라집니다.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어집니다. 철저한 기반의 붕괴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절망”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따라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심스러운 존재로 다루는 것, 이것은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의 시작입니다. 모든 것을 의심할 때는 굉장한 발견으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심할 때에는 침묵과 경건에 이르게 되지요. 왜냐하면 그 앞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바로 그 현장에서 자신의 죄를 목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은 “조용한 혁명”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의심스러운 존재로 다루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세상을 더 두려워한 것은 아닌지요? 
  
키에르케고어는 그의 강화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잘못된 의심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반면, 구원하는 의심은 믿음의 도움으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심한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심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십시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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