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주아 속물주의란?, 두려움과 떨림 78쪽.
“부르주아 속물주의”(bourgeois philistinism)는 중산층의 안일한 물질주의, 자기만족, 세속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키르케고르가 『두려움과 떨림』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는 맥락을 이해하려면, 그의 철학적 배경과 “믿음의 기사가 왜 오해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 부르주아 속물주의(Bourgeois Philistinism)란?
✔ “부르주아”(Bourgeois): 원래는 **중산층(자본가 계층, 시민 계급)**을 의미하지만, 철학적 논의에서는 자기만족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특히 신앙과 초월적 가치를 배제하고, 물질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를 뜻한다.
✔ “속물주의”(Philistinism):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
• 문화적·영적 깊이에 대한 무관심
• 지적·예술적·영적 탐구를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
💡 즉, 부르주아 속물주의는 단순히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깊이를 무시하고 세속적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태도를 의미한다. 키르케고르가 이를 비판하는 이유는, 이러한 태도가 신앙의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사회적 안정과 합리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2️⃣ 왜 “믿음의 기사”는 부르주아 속물주의와 닮았는가?
키르케고르는 “무한 체념의 기사(knight of infinite resignation)“와 “믿음의 기사(knight of faith)“를 구분합니다.
• 무한 체념의 기사: 그는 모든 세속적 집착을 내려놓고, 철학적으로 깊은 성찰을 하며, 세상을 초월한다. 그의 걸음걸이는 “가볍고 대담하다.” 즉,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체념했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 믿음의 기사: 그는 무한 체념을 넘어, 신앙의 역설을 받아들이는 자이다. 그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역설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외적으로 보면, 그는 평범한 중산층 시민처럼 보인다.
💡 즉, 믿음의 기사는 세속적인 부르주아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신앙의 역설이 숨겨져 있다.
💡 그는 단순한 세속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속 속에서 신앙을 실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3️⃣ 키르케고르의 핵심 논점: 믿음은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 “무한 체념의 기사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난 듯한 태도를 보이며, 세속적 가치를 완전히 체념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즉, 그들은 고귀하고 철학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인다.
• “믿음의 보물을 가진 자들은 실망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적으로 보면 평범한 부르주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신앙은 눈에 띄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들은 신앙의 역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 결론적으로, 키르케고르는 신앙이 단순한 외적 표지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 믿음의 기사는 부르주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세속적 가치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신앙의 역설을 품고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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