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에 실린 글 중에서 2부의 2장에 해당된다. 두 번째 강화는 동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염려하는 자의 반항unwillingness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복음은 염려하는 자의 관심을 전환시킨다. 복음은 염려하는 자에게 저 들을 보라고 말한다. 저들의 아래에는 백합이 있고 공중에는 새가 있다.
거기에서 복음은 염려하는 자에게 새와 백합을 보라고, 그들에게 집중해보라고 권면한다. 그 결과, 염려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배운다. 자기 집착self-preoccupation에 빠져있다가 벗어난다. 세상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던 염려하는 자가 새와 백합을 바라봄으로써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키르케고르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경건한 기분전환godly diversion, gudelig Adspredelse"이라고 말한다. 이 기분전환은 세속적이고 공허한 기분전환과 달리, 어떤 조급함도 없고, 염려를 강화시키지도 않는다. 사람이 이 기분전환에 경건하게 몰입하면 할수록, 이 기분전환은 더욱 그의 기분을 풀어주고, 그를 진정시키고 설득한다.
하지만 불꽃놀이처럼 세속적인 기분전환은 우리에게 "다양한 기분전환을 압축시키는 방법을, 그것을 한 순간에 터지게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것은 기분 전환이 그 순간에만 해당되는 한, "자기 모순self-contradiction"이다.
인간의 기술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기분전환은 겨우 수 분minutes만에 지나갈 뿐이다. 따라서 그때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는 더욱 소름끼치게 명확해진다.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기다릴 때, 성급한 흥분상태를 경험하기 위하여 돈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 불꽃놀이는 끝나고 만다. 그런 기만적인 불꽃이 다 터지고 나면 즉시 무nothing로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기분전환만을 알고 있는 자의 영혼도 마치 이와 같다. 그는 기분전환을 발견한지 몇 분 만에, 시간의 길이에 대하여 절망한다.(본문 중에)
이와 대조적으로, 하늘에 가득한 별과 같은 경건한 기분전환은 염려하는 자에게서 "시간"을 훔쳐간다. 왜냐하면 이 기분전환은 "영원"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염려하는 자가 경건한 기분전환의 도움으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바라볼 때, 생각해야 할 다른 무언가를 터득한다. 곧,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생각한다.
백합을 통해 배워야 할 수업의 핵심은 무엇보다 첫 번째 강화에서 배운 백합의 가르침을 되풀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구쟁이 새가 자신의 경쾌한 비행을 뽐내기 위해 이리 저리 날아 다니며 더 아름다운 백합에 대해 잡담을 하듯, 여기에서도 초점은 백합의 옷, 백합의 외모다. 문제는 의복에 대한 염려다. 이 문제는 모든 종류의 비교와 관련된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옷이 입혀진다는 것은 곧 백합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백합의 실존과 옷과는 어떤 차이점도 없다.
세상은 어떨까? 세상은 옷에 대하여, 옷의 다양성과 차이점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은 옷에 대한 비교로 가득 차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복음은 어떨까? 복음 역시 비교의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더욱 입히시지 않겠는가?(마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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