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새와 백합에게 배우라10 선택은 왜 제거할 수 없는 선인가? 선택은 왜 제거할 수 없는 선인가?, 새와 백합에게 배우라 226쪽 해설1. 선택은 인간 실존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한 존재(væren)가 아니라, 되어가야 할 존재(tilblivelse)입니다. 즉, 인간은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형성해야 할 과제이며, 그 형성은 선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절망 속에 있다.” (Sygdommen til Døden)→ 따라서 선택은 인간 존재가 존재이기를 그치지 않고, 실존이 되기 위한 존재적 조건입니다. 2. 선택은 ‘자유’의 실천이며, 자유는 제거될 수 없는 인간의 구조입니다.선택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신적 선물.. 2025. 4. 30. 새와 백합에게 배우라, 제3장 창백한 추수꾼 해설, 219쪽 ◄ 창백한 추수꾼(den blege Høstkarl) : 이는 죽음을 상징하는 널리 퍼진 이미지입니다. 예를 들어, “죽음처럼 창백하다(bleg som døden)“는 표현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낫(le)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낫을 든 남자, 즉 ‘죽음의 수확자’로서의 인간형은 15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상징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이는 민중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인기 있는 도상이 되었습니다.예컨대 ≪인간 생명의 도피 또는 죽음의 춤(Det menneskelige Livs Flugt, eller Døde-Dands)≫ — 본서는 죽음이 어떤 인물도 예외 없이, 심지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세상에서 영원으로 데려간다는 사실을 시각적 이미지와 교훈적인 시를 통해 묘사합니.. 2025. 4. 30. 이교도의 놀라움, 150쪽 해설 소크라테스와 데카르트의 철학적 출발점—즉 놀라움(Forundring)과 의심(Tvivl)◄ “저 고귀한 현자(hiin ædle Vise) … 놀라기 시작했다(begyndte at forundre sig)”:이 표현은 소크라테스를 가리킨다.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Theaitetos)≫ 155d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으로, 놀라움(θαυμάζειν)은 지혜의 친구에게 고유한 상태이며, 철학의 시작은 다름 아닌 바로 이 놀라움이다.”(덴마크어 번역: “지혜를 사랑하는 자에게 고유한 것은 놀라움이다. 철학에는 이 외에 다른 어떤 시작도 없다.”)— 이 문장은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독일어 번역본 Platons Werke 제3권(1818년) 212쪽,또는 Platons Skrifter 제6권 .. 2025. 4. 9. 무가 됨으로써 예배하는 자 되기, 149쪽 해설 ◄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to worship in truth, tilbede i Sandhed)”:이는 요한복음 4장 7–26절, 곧 예수께서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를 가리킨다. 그 대화 중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예배하는 자로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장 23–24절) 이 구절은 키르케고르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Usynlig Aand)이시며, 그분은 외적 형식이 아니라 내면의 진정한 영적 태도를 통해 예배되어야 한다는 중심 사상과 완벽히 연결됩니다.그가 말한: “He.. 2025. 4. 9. 우리가 기다리는 것, 148쪽 해설 ◄ “기다려지는 그것(dette, der ventes på)”:이는 로마서 8장 19절을 가리킨다. 여기서 바울은 이렇게 쓴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다.”(또는 개역개정: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이 구절은 키르케고르가 말한 다음의 문장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합니다:“자연이 기다리는 것은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인간의 현현이다.”즉, 피조물 전체는 인간이 단순히 지배자가 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을 예배하는 존재로 ‘드러나는 것’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로마서 8장 19절과 키르케고르의 사유는 실존과 계시의 접점에서 만납니다.이 부분은 키르케고르의 Til.. 2025. 4. 9. 사람이 몸에 대하여 가장 완전하게 말한 이방인, 147쪽 이 문맥에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이방인(hedningen)이 인간의 육체적 영광에 대해 가장 완전하게 말했을 때조차 여전히 불완전했다”고 할 때, 그가 염두에 둔 대표적인 인물은 플라톤 또는 플라톤적 전통에 선 스토아주의자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암시되고 있는 인물은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나오는 케베스(Kebes)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유를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 문맥적 단서: “육체적 영광에 대해 가장 완전하게 말한 이방인”이 표현은 바로 앞서 당신이 인용하신 키르케고르의 주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en Hedning … Sjelen … liig en Væver … Paaklædning : sigter til en udtalelse af Kebes .. 2025. 4. 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