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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대한 해석으로 허다한 죄를 덮는다 예전에 제주도 올레길 살인사건 기사가 생각이 난다. 그 뉴스 기사에 따르면, 살인자의 어머니는 “그 아이는 평생 나를 위해 살아왔다”며 범행 사실을 믿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심지어는 이웃 주민들도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15년 전쯤 원양어선을 타면서 고생해 번 돈을 내 암 수술비에 다 쓰려하기에 말렸더니 ‘돌아가시더라도 수술은 해보고 돌아가셔야 한다’며 나를 수술시켜 이렇게 살 수 있게 해줬다”며 눈물을 훔쳤다고 전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 살인자의 엄마가 감옥에 갇힌 아들을 찾아간다. 아들 면회를 요청하고 아들을 만나며 말한다. “우리 아들은 그런 아들 아녀. 절대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지. 그렇지?” 모든 사.. 2019. 8. 7.
04 키에르케고어의 기도 해제 이 기도는 누가복음 7장 47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적게 사함을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는 말씀은 심판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위로의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정의가 심판입니다. 정의는 가혹한 심판이요 사랑은 너그러움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심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심판한다 해도, 사랑은 너그러운 심판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가혹한 심판이라는 겁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보다 더 가혹합니다. 바벨탑에서 언어의 혼잡보다 더 가혹한 심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보다 더 가혹한 심판입니다. 바로 이 가혹한 최후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죄 .. 2019. 8. 6.
03 키에르케고어의 기도 해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죄를 숨기는 데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죄를 숨기는 데에 성공한 것을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자기의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숨겨진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죄가 하나님께 숨겨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죄가 아닙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알자마자, 그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곳에서, 또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을 때, 이 죄는 더 이상 발견될 수 없다는.. 2019. 8. 5.
02 기도 2019. 8. 2.
01 기도 2019. 8. 2.
10 콩깍지가 씐 사랑은 침묵으로 허다한 죄를 덮는다 요즘 인터넷에 비난하는 댓글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비난의 댓글로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에 이르기까지 하는 뉴스를 듣는다. 이미 다 알다시피, 연예인들도 악성 댓글로 인해 자살한 경우도 있다. 악성 댓글과 악성 루머로 인한 억울함과 외로움, 우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가 “침묵”이다. 콩깍지가 씐 사랑은 침묵으로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두 남녀를 생각해보자. 때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가 숨겨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들이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에게 비밀을 간직하자고 약속하는 순간을 가정해 보라. 거기에 우연치 않게 제 3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성실하고 다정.. 2019.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