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Changelessness of God: A Discourse
- Guds Uforanderlighed. En Tale
- 1855
- KW23, SKS14, SV14
네 번째 시기: 두 번째 저술의 서막(1846-48년)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Upbuilding Discourses in Various Spirits
특별한 때를 위한 강화 An Occasional Discourse: On the Occasion of a Confession: Purity of Heart is to Will One Thing
이 강력한 작품은 두 마음double-mindedness을 품는 것과 윤리적 진실성 ethical integrity에 관련된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몇몇 건덕적 강화에서처럼, 이 작품을 큰 소리로 읽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는 대중 앞에서의 공개 고백을 위한 개인적인 준비로 계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종교성 A라고 부른 것과 관련이 있을지라도, 그는 이 작품을 윤리적 아이러니로 분류했다. 때로는 독자들은 하나님을 찾도록 격려를 받고 때로는 선, 영원한 것, 섭리를 구하도록 격려받는다.
이 강화에서 하나님은 "단순한 분simple"으로 제시된다. 나는 이 용어를 아퀴나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하나님은 조직신학적으로 말하자면, 본성에서 단수이신 분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분리될 수 없고, 모순될 수 없다. 이는 단성론이니, 삼위일체와 같은 교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불변한다(이 부분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불변성The Changelessness of God>을 참고하라).키르케고르는 하나님을 생각과 의지와 존재가 일치하신 분으로 간주한다.
반면, 사람은 그 본성에서 분리되어 있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자신 스스로와 분열되어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려 하든가(반항)," "자기 자신이려 하지 않든가(부정)" 이 중 하나에 절망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마음의 청결>에서, 사람은 한 가지의 목적, 곧 한 마음을 품거나 두 마음을 품는다. 이 작품은 대부분은 이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파헤친다. 두 마음을 품는 곳에서 마음의 청결로의 이동은 결단력 있는 의지의 행위다. 우리가 한 마음을 품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일시적이고 시간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독자들에게 영원한 것으로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이 작품에서 실존적인 면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결단volition, free will고, 의지다. 소크라테스는 선을 알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선을 행할 수조차 없다. 그는 사람이 무지로 인해 악을 행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에게, 선을 선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선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있을 수밖에 없는 장애물을 파헤친다. 그것은 인지적인 것, 의지적인 것, 심리적인 것 혹은 영적인 것일 수 있다.
사람 안에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변화 안에서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 ...회개는 명확히 과거의 것과 현재 그의 삶이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
사람은 당연히 분리되어 있고 두 마음을 품었을지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구해야 한다. 사람은 과거의 행위를 버리기 바라며 미래의 선을 향해 방향을 돌리기 바라므로, 회개는 과거와 미래와의 관계에서의 의지적 행위다. ;다시, 이것은 윤리적 영역에서의 행위로 고정된다. 특별히 키르케고르가 독자들에게 헌신하기를 촉구할 때, 윤리적 반복ethical repetition이다(이 부분에 대하여는 <반복repitition>을 참고하라). 게다가, 기도는 기도하는 자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기도하기를 권면한다.
우리가 품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 목적으로 악을 품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한 마음을 품고 악을 행할 수 있을까?
선이 아닌 한 가지를 품은 사람은 한 가지를 품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요, 망상이요, 기만이다. 그가 한 가지만을 마음에 품었다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그의 속사람 속에서, 그는 두 마음을, 틀림없이 두 마음을 품었다. 따라서 사도는 말한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청결하게 하라." 즉, 두 마음을 품은 당신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라. 다시 말해, 진리 안에서 당신의 마음이 한 가지만을 품게 하라. 왜냐하면 바로 그 안에 마음의 청결이 있기 때문이다.(p. 25)
특별히 키르케고르가 언급한 구절은 야고보서 1장이다. 야고보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야고보서는 때로는 신약의 잠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마틴루터가 미약한 기독론으로 인해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경시했다. 아마 그는 야고보가 말한 행위에 대해 잘못 이해했다. 행위가 공로보다는 믿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믿음의 단순성과 강조 때문에 야고보서를 좋아했다.
키르케고르는 또한 후에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언급할 주제에 대해 말한다. 바로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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