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cles from the Fatherland
- 1854-55
- KW23, SKS14, SV14, S. Kierkegaards Bladartikler
여섯 번째 시기: 기독교에 대한 공격(1854-55년)
조국에 실린 기사Articles From The Fatherland
배경
여기에 키르케고르의 기독교계에 대한 공격을 촉발시킨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그의 저술 전반에서, 특히 이 기간 동안, 그는 그리스도로의 회심에는 질적인 신앙의 도약이 필요하고, 따라서 온전한 사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루터교회는 모든 덴마크 사람은 루터교도로 태어나 사실상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터교는 그리스도로의 급진적 회심을 무위로 전락시켰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을 불경스러운 국교로 탈바꿈시키려 하였다. 이 종교에서 국가의 시민권과 교회의 구성원이 동일했다. 사실 출생 증명서는 교회 구성원 자격뿐만 아니라 시민권 확립에도 기여했다. 루터교 이외의 교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등기부에서 이름을 삭제한 것이나 같다.
예를 들어, 침례교인들은 한때 루터식 방식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키르케고르는 "공식적 기독교" 혹은 기독교계가 신약성서의 기독교에서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에 개혁이 아닌 철거와 재건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수님이 '좁다'라고 표현한 길은 기독교계에 의해 넓게 선언되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종종 오해되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의 공격은 그가 내부에서, 신자로써 교회를 공격했기 때문에 이례적이었다. 코펜하겐의 일간지인 조국(Fædrelandet)에 이런 기사가 실릴 때까지 키르케고르는 그렇게 직설적이고 거리낌없이 실패한 기독교계의 주제에 접근한 적이 없었다.
키르케고르의 공격에 대해 약간의 반응이 있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간행물로 구성했었다.
- <조국>21개 기사 중 첫 20개 기사
- "이것은 말해야 한다. 그러니 말해두자"라는 제목의 별도의 트랙
- <조국> 21번째이자 마지막 기사
- <순간>의 첫 2편
- "공식적 기독교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
- <순간>의 3편부터 9편
- 키르케고르가 죽은 후 <순간> 10편
이렇게 말했으니 키르케고르가 갑자기 교회와 국가에 대한 이 관점을 채택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의 9년 전인 1846년,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에서 그의 가명인 요하네스 클리마쿠스는 자신의 "괴짜" 남편에게 연설하는 아내를 상상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덴마크인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리학 책에는 덴마크의 지배적인 종교가 루터교-기독교라고 나와 있지 않은가? 당신은 유대인이나 모하메드인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때 당신은 다른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교도들이 대체된 지 천 년이나 지났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이교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당신은 좋은 공무원으로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당신은 기독교 국가, 루터교 기독교 국가에서는 선량힌 백성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다.
1847년의 일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제복의 문제에서 어떤 원장들은 넓은 보, 다른 비단, 벨벳, 봄바진 등을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이 진짜 제의인지 궁금하다. 나는 진정한 교회법이란 이런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선한 목적으로 조롱당하는 것, 경멸을 받고 침뱉음을 당하는 것, 이런 것들로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닌지. 확실히,그리스도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론은 십자가에 못박혀 드러난 것이 세계의 죄악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그러나 비단 옷으로 치장하고 이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 역겹다! (VIII I A 102).
<자기 시험을 위하여>와 <스스로 판단하라!>와 같은 이전 작품들은 진정한 기독교의 주제를 공식적 기독교와 반대되는 것으로 다루었다. <기독교의 훈련>에서 키르케고르는 "기독교 세계에 기독교를 재도입"하려고 했다. 그는 1855년에 이 작품을 재출간하였고, 1855년 5월 16일에 등장하여 《조국》에 20번 기고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나의 이전 생각은 이렇다: 기성교회establishment가 조금이라도 방어될 수 있다면, 유일한 방법으로, 시적으로 이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따라서 가명에 의한 방법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 힘으로 고양된 "은혜"에 의지하여 기독교가 단지 과거의 것에 대한 용서가 아니라 은혜에 의한 일종의 베풂이다. 이것은 올바른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과련된 노력에서 나온다. 그런 식으로 진리는 결국 기성교회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가명을 없애고, 세 번째로 반복된 서문과 교훈을 없앤다. 그때 <기독교의 훈련>은 기독교적으로 기성교회에 대한 공격이지 (p. 69).
키르케고르의 일기는 우리에게 그의 생각과 동기를 어느 정도 알려준다.
'수정사항'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은 기성교회의 약한 면을 정확하고 심오하게 연구한 다음, 그 반대되는 것을 힘차게 일방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확히 이 안에 수정 사항이 있고, 이 또한 이를 적용해야 하는 자의 감수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수정사항은 기성교회의 질서에 희생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영리한 사람은 수정사항에 대해 일방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맙소사! 수정 사항을 적용하는 사람에게 다른 쪽에 제공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그때 수정하는 것은 중단되고 그것은 기성교회 질서가 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덴마크 교회의 주교 뮌스터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 때문에 그에 대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또한 그는 어드 정도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작가로서 양심에 걸리는 일이 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말해준다. 내가 분명히 말해야 할 말이 있는데, 양심에 너무 걸려서 (느낌대로) 말하지 않고는 감히 죽을 수 없다. 내가 죽고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나는 바로 같은 순간에(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바로 그 순간에(얼마나 빠른가!), 나는 무한히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 여전히 같은 순간 안에(얼마나 놀라운 속도인가!), 질문이 내게 던져질 것이다: "당신은 정확하게 메시지를 말했는가?" 그리고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나 확실히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하도록 무한히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이해한 대로) 그랬고 내 임무로 남아 있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랑한 메시지, 명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듣기에 달갑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내게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존경받는 의로운 목사가 있다. 그는 나를 끊임없이 제지하고, 내 혀와 내 펜 위에 있는 자다. 교회의 가장 높은 자들에 대한 배려, 죽은 아버지의 기억으로 나는 거의 우울한 애정으로 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을 말한다는 것은 특히 그에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Journals, 1853년).
바로 이 바로 이 사람이 뮌스터였다. 뮌스터 주교는 침례교인들에게 강제적인 침례를 적용하려는 시도에 책임이 있었다(위의 언급). 이것은 키르케고르가 비열한 정신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의무감에서 행동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뮌스터 목사에 대한 그의 사랑, 그리고 목사를 사랑했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이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키르케고르가 죽기 1년 전인 1854년 뮌스터가 죽었을 때, 키르케고르는 마침내 자신의 우려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를 부추긴 한 사건은 후에 질랜드의 시(See of Gealand)를 계승한 신학 교수(헤겔 학파)인 H. L. 마르텐센(H. L. Martensen)이 뮌스터를 위해 한 기념 설교였다. 마르텐센은 뮌스터가 사도들에게 돌아간 진리의 증인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 연설은 마르텐센 쪽에서는 정치적 승진을 위한 시도일 뿐만 아니라, 뮌스터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키르케고르에게는 모욕적이었다.
일기에서 발췌한 내용은 자신을 공격자로 보는 키르케고르의 관점을 더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
크고 잘 훈련된 순종적인 사냥개를 상상해보라. 그는 주인과 동행하여, 우리 시대에 자주 그렇듯이, 버릇없는 젊은이들로 가득찬 가정을 방문한다. 그들이 사냥개를 온갖 방법으로 학대하기 전에 그들의 눈은 사냥개를 발견하지 못한다. 잘 훈련된 사냥개는, 이 젊은이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즉시 그의 주인에게 시선을 고정시켜 그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그의 표정에서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그는 저 눈초리는 모든 학대를 참아야 함을 뜻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것이 마치 자기에게 베푸는 순수한 친절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더 거칠어진다. 하지만 마침내 그들은 모든 것을 참아야 하는 멍청한 개가 되어야 함에 동의한다.
그 동안 개는 오직 한 가지, 즉 주인의 눈초리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보라, 저 눈초리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너의 힘을 쓰라!" 곧, 사냥개가 그것을 즉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한 번의 도약으로 그는 가장 나쁜 놈을 잡고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지금 주인의 눈초리 말고는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한다. 그가 있는 이 순간은 조금 전과 같은 순간이다. 나도 이와 똑같다.
기사The Articles
1854년 12월 18일부터 1855년 5월 26일까지 키르케고르는 <조국>에 21편의 글을 실었다. 이것들은 1857년에 S. Kierkegaards Bladartikler로 사후에 수집되었다. 이 기사들은 변증법이 부족다는 점에서 그의 이전 작품들 모두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 기사들은 과장된 표현과 날카로운 비판과 가슴 아픈 비교로 가득 차 있다. 의도적이면서 일방적이다.
<조국>에 실린 기사들의 전체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1854년 12월 18일: "뮌스터 주교가 '진리의 증인'이었는가, '진실한 진리의 증인' 중 하나인가."—이것이 진리인가?"
- 1854년 12월 30일 : "저기 문제가 놓여 있다!"
- 1855년 1월 12일 : "팔루단 뮐러Paludan-Möller 목사의 나에게 도전"
- 1855년 1월 29일 : "마르텐센 주교와 논쟁의 요지, 기독교적 관점에서 기독교적으로 결정적이면서 의심스러운 기성 교회 질서"
- 1855년 1월 29일: "두 명의 새로운 진리의 증인"
- 1855년 3월 20일: "뮌스터 주교의 죽음에서"
- 1855년 3월 21일 : "이것이 기독교 예배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바보로 만드는 것인가?"
- 1855년 3월 22일: "꼭 해야 할 일—그것은 나를 통해서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나 일어날 일"
- 1855년 3월 26일 : "종교적 상황"
- 1855년 3월 28일: "논문—단 하나의 것"
- 1855년 3월 30일: '소금'; '기독교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붕괴, '기독교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변절"
- 1855년 3월 31일 :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1855년 4월 7일 : "이 신문 제79호에 나와 익명의 제안을 한 경우에"
- 1855년 4월 11일 : "'경보 울리기 그만둬라'는 게 지금 최선일까?"
- 1855년 4월 11일 : "왕실 증명서가 있는 기독교와 왕실 증명서가 없는 기독교"
- 1855년 4월 27일 : "얼마나 잔인한 형벌인가!"
- 1855년 5월 10일: "결과"
- 1855년 5월 10일: "독백"
- 1855년 5월 15일: "나에 대한 불필요한 거만함과 내가 주의하고 있는 기독교의 개념"
- 1855년 5월 16일 : "<기독교의 훈련> 신판을 위하여"
- 1855년 5월 26일: "저 마르텐센 주교의 침묵은 (1) 기독교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2) 터무니없고, (3) 둔하면서 현명하고; (4) 경멸할 만한 것 이상이다."
1854년 12월 18일 키에르케고르는 "뮌스터 주교가 '진리의 증인'이었는가, '진실한 진리의 증인' 중 하나인가."—이것이 진리인가?"라는 제목의 첫 번째 글을 출판했다.(Var Biskop Mynster et "Sandhedsvidne", et af "de rette Sandhedsvidner", er dette Sandhed?) 키르케고르는 성공회 선거 때까지 이 연구소의 출판을 연기했다. 키르케고르의 마음속에는 뮌스터가 미지근한 신학을 대표했다. 만약 뮌스터가 진리의 증인이라면, 모든 목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키르케고르는 이 마지막 단계의 고압적인 스타일로 진리를 위한 증인은 조롱받고 학대받고 고문을 받을 정도로까지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기사의 시작과 끝 날짜를 주의하라. 이는 키르케고르가 출판을 지연시켰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1854년 2월. 마르텐센 교수가 "뮌스터 주교의 장례에 앞선 일요일인 에피파니(예수 탄생) 이후 다섯 번째 일요일에 한 연설"에서, 마르텐센 교수의 추모 설교가 있었다. 이 설교에서 뮌스터 주교는 진리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추천된 것이다. 진실에 대한 논증, 이것이 가장 강력하고 결정적인 용어로 확인되고 있다. 죽은 주교의 모습, 그의 삶과 태도, 그리고 이 문제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그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도록 "진정한 안내자, 진리의 진정한 증인의 믿음을 모방하라"고 권면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뮌스터 주교에게 분명히 말했고, 보여주었던 것처럼, "말과 직업에서 뿐만 아니라 행함과 진리에 있어서도 본받아야 한다." 그 때문에 뮌스터 주교에게 분명히 말한 것처럼, 고인이 된 주교는 마르텐센 교수에 의해 "사도시대부터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의 거룩한 증인으로" 소개되었다.
이에 대해 나는 항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뮌스터 주교가 죽었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말할 수 있지만, 이 장소에서는 내가 추측했던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결정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할 수 없다....마이스터 주교의 설교는 결정적으로 기독교적인 것을 부드럽게 다루고, 대충 넘기고, 억압하고, 생략했다. 결정적으로 기독교적인 것은 우리 사람에게는 잘 안 맞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고달프다. 우리가 삶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 자발적 포기,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 교리로 고난당하는 것과 관련된 이 기독교적인 것 때문에 그렇다. 이것을 보기 위해 특별히 날카로운 안목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만약 누군가가 신약성경을 뮌스터의 설교와 나란히 놓는다면....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항의는 반드시 와야 한다. 이 항의가 늦어져 심각해질수록, 설교단에서 대표되는 것에 대한 항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증인으로서 뮌스터 주교에 대한 항의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이니까. 이런 식으로 천국에 울부짖는 거짓임을 선포했다. 1854년 12월 (p. 3, 8).
이런 일련의 교환을 통해, 키르케고르는 여러 싸움에서 공격의 수혜자였다(공식적 교회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침묵을 지켰을지라도 그렇다). 마르텐센은 키르케고르가 증인의 정의를 "순교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했고, 그는 계속, 사도 요한을 제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교리로 인해 내적으로 고난당할 수 있다고 항상 말해왔다. 마르텐센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키르케고르는 다시 여섯 번째 기사에서 "주교 뮌스터의 죽음에서"(1855년 3월 20일)라는 제목으로 뮌스터의 주제를 다루었다. 마지막 기사 (21번째, 1855년 5월 26일)에서 키르케고르는 마르텐센이 자신의 주장을 다루기를 꺼리는 것을 언급했다. 그 글의 제목은"저 마르텐센 주교의 침묵은 (1) 기독교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2) 터무니없고, (3) 둔하면서 현명하고; (4) 경멸할 만한 것 이상"이다.
그러나 이 땅의 주교장chief bishop은 어떻게 자신을 만족시킬까? 새해를 맞이하는 전달 밤의 소년들과 같다. 그들은 기회를 보고, 사람들의 문 앞에 냄비를 던질 기회를 포착하고, 급히 도망쳐 다른 거리 근처에서 돌아다닌다. 경찰이 그들을 잡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래서 마르텐센 주교는 뮌스터 주교에 관한 나의 기사가 일으킨 큰 소동 속에서 자신의 기회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내 머리 위에 욕설과 거친 말로 된 쓰레기통을 던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도망쳤다. 그러나 마르텐센 주교는 가장 깊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기 위한 도전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79쪽)
그러나 대중의 비판에 대응하여 그는 1855년 3월 31일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12번째 편으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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