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교 강화/고난의 기쁨

시간과 영원의 문제

by 엉클창 2021. 4. 15.

 

시간과 영원의 문제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일단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거스틴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영원>에 관련된 깊은 생각을 했던 중요한 사상가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어거스틴은 시간과 영원의 문제가 이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어거스틴에게 시간은 영원에 흡수됩니다. 시간은 창조와 함께 생성된 것이고, 영원은 무시간성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에게,
시간은 영원과 섞일 수 없고 언제나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에서 살아갑니다. 문제는 시간적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다 사라집니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시간 안에서는 어떤 존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많은 사상가들이 있었지만,
시간과 자유의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키르케고르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그가 왜 시간 안에서 인간이 자유로울 수 없는지를,
간단히 설명합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개인이면서 사회 속에 살아갑니다.

문제는 개인인 인간이 사회 밖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나뭇잎과 나무와의 관계와 같아서,
나뭇잎이 나무 밖에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나뭇잎(개인)이 떨어져 죽어도,
나무는 살고 있다는 거고,
나무는 영속성이 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은 시간에서 죽고 살아져도,
지금까지 사회는 존속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 속에서,
인간은 사회의 규칙과 규범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기에,
참다운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자연이 자연법칙 속에 있어 자유롭지 않듯,
인간은 사회법칙 속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죠.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원을 끌어들입니다.

영원에서, 정신의 영역에서,
키르케고르가 좋아하는 용어, "하나님 앞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시간에서 영속성을 가지고 존재했던 사회,
이 사회가 영원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원에서는 오직 개인만 존재합니다.

영원에서 각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영원에서 그는 혼자입니다.
영원에서는 자식도 없습니다.
영원에서는 아내도 없고,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영원을,
이 사회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책으로 끌어들입니다.

또한 이 영원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죠.
바로 이것이 코람데오이고,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어렵죠.
쉽지 않는 글이지만,
이 글은 생동감 넘치는 기독교 문학입니다.

지금 편집작업 중에 있습니다.
키르케고르 글은 천천히 읽어야 행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이 정도만 소개하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