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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인문학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by 엉클창 2021. 11. 12.

 

옛날에 왕이 행차할 때, 왕에게 직접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거의 죽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백성들은 왕을 직접적으로 쳐다볼 수도 없었고, 머리를 땅에 대야 한다. 그런데 거만하게도 왕이 행차할 때, 똑바로 쳐다본다? 아마 그날로 그는 죽음을 각오하거나 왕에 대한 불경죄로 감옥에 끌려가고 말 것이다! 신분의 차이가 있는 왕 앞에 나아가려 한다면, 그는 형벌로 내던짐을 당하는 것이다.

화성능행도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직접적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나님이 인간을 직접적으로 내던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직접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신 분이시고, 죄가 없으신 분으로, 먼저 그분께 나아가기 위해서 죄를 발견하지 않고는 그분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세도 하나님의 면전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던가?

중요한 점은, 하나님 앞에 있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 더욱 강화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것은 법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일종의 ‘가중처벌’이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self)에 대한 의식이 증가한다. 자기가 얼마나 죄가 많은지 만천하에 밝혀진다.

사람은 사람을 기준으로 둘 때도 살기가 버겁다. 사람이 만든 가치, 예를 들어, 윤리적인 삶, 법적인 삶을 사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을 둔다. 자기란 결국 이 기준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둔다는 것은 자기의식이 한 층 더 강화된다. 이 충격적인 기준이 하나님의 목표요, 사람에게 제시한 목표다. 이때 사람은 그리스도 앞에 있을 때, 자기의식은 더욱 강화되며, 그럴수록 죄의식은 더욱 강화된다. 따라서 이것을 ‘가중처벌’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때 죄의식이 강화될수록, 절망적인 영적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더욱 죄를 강화시킨다. 이때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기 위해 화해를 제안하신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의 특징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과 진지하게 관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저 기독교 밖의 이방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기독교 밖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앞에서 죄의식이 강화되어 절망한 자들이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면서도 죄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서서 말한다.

“죄를 용서한다고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마치 하나님과 육박전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가까운 위치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싸움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는 하나님과 멀리 있어야 한다. 영적으로 이해하자면, 하나님과 육박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질적으로 먼 거리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을수록, 더욱 공격적인 성향은 강화된다. 따라서 하나님께 가장 공격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장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영적 전쟁의 실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하나님과 육박전을 벌이기 위해서 가장 먼 거리에 있어야 하다니! 이 전투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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