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실천』, 특히 지금까지 나눈 문맥에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최고선(høieste Gode)”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은, 그의 전체적인 실존 윤리와 신학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키르케고르에게 최고선(høieste Gode)이란,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사랑의 실존”이며, 이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개별자’로 완성됩니다. 즉, 최고선은 단지 “덕”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로 존재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그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진실한 자기 자신(Selv)입니다.
아래에서 단계적으로 풀어드리겠습니다.
🟩 1. 용어 정리: 키르케고르가 사용하는 “최고선(høieste Gode)”
- “Det Høieste Gode”는 덴마크어로 “가장 높은 선”, “최상의 선”을 의미합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최고선은 ‘행복(eudaimonia)’이며, 목적론적 완성입니다.
-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 개념을 전복시키고 갱신합니다.
그는 『사랑의 실천』 등에서 최고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최고선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자기 동일성이다.”
🟨 2. 『사랑의 실천』에서 최고선은 다음 세 가지를 포함합니다:
(1)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
- 키르케고르에게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 자신의 본질입니다.
- 따라서 사랑은 곧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이 관계가 존재의 목적이자 최고선입니다.
(2) 믿음으로 살아가는 실존
- 사랑은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모든 판단과 기만의 가능성 안에서 ‘믿음으로 사랑을 선택하는 실존적 결단’입니다.
- 이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사랑”으로 표현되며, 기만당할 위험 안에서조차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실존의 진리입니다.
(3) 자기 자신이 되어감 (Selvet)
- 최고선은 외부 보상이나 사회적 완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 “자기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만 가능하며, 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아는 하나님 앞에서 수립된다”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 3. 문맥으로 돌아가 보면?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랑이 스스로에게 충실할 때, 곧 최고선과의 일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고선은
- “결과에 따라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에 충실한 존재 상태”이며, 그 사랑은 그 자체로 속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을 진실한 존재로 세웁니다.
🔴 결론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최고선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그 자체이며, 이 관계 안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자는 그 어떤 기만으로부터도 속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한 문장 요약
최고선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 안에서 사랑으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실존의 진리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 자체가 최고선이다”라는 선언은, 고대 그리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 체계를 근본에서 전복하는 진술입니다.
이 점을 구조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1.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선: 본성적 목적의 실현 (텔로스)
고대 그리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 최고선(det højeste gode, τὸ ἀγαθὸν)은 모든 것이 지향하는 목적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경우 ‘이성적 삶의 탁월한 실현’, 즉 덕(arete)의 완성을 통해 주어지는 행복(eudaimonia)입니다.
- 윤리는 본성에 대한 이성적 숙고와 실천을 통해 성취됩니다. 이는 보편성, 일반성, 자기 동일성을 전제로 합니다.
요약하자면:
최고선 = 자연적 질서에 따른 인간의 이성적 목적 완성.
🟨 2. 키르케고르의 최고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사랑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선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진리는 주어지는 것이며, 믿음 속에서 생성된다.”
그 결과:
- 최고선은 내 안에 있는 어떤 본성의 실현이 아니라, 나 바깥에서,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실존적 진리입니다.
-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잃고서라도 믿음 안에서 다시 자기를 찾는 길이며, 윤리는 보편이 아니라, 예외 속에서 절대자와 직접 맺는 고독한 관계에서 형성됩니다.
이렇게 최고선은: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며, 그 관계가 없이는 어떤 윤리도, 어떤 선도, 어떤 자기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 3. 전복의 본질
이 선언은 단지 도덕철학을 넘어서, 그리스 철학 전체의 인간 이해, 존재 이해, 진리 이해를 전복합니다:
구분 | 아리스토텔레스 | 키르케고르 |
최고선 | 이성적 덕의 완성 |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
진리 | 인간 본성의 실현 |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 |
자기 | 목적 실현적 주체 | 관계적 실존, 타자 앞에서 형성 |
윤리 | 보편적, 사회적 | 절대자와의 고독한 관계 |
키르케고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동물로서의 인간” 개념을 해체하고, “하나님 앞에 선 고독한 실존”으로 인간을 다시 규정합니다.
🟢 한 문장 요약
하나님과의 관계 그 자체를 최고선이라 부르는 순간, 인간 중심의 목적론적 세계는 무너지고, 사랑과 믿음을 통한 전혀 다른 존재론이 열립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키르케고르 선 개념 비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키르케고르(Kierkegaard)는 모두 최고선(summum bonum, det højeste Gode)을 하나님(Gud)으로 동일하게 말하지만, 그 개념의 구조와 존재론적 지평은 상당히 다릅니다.
🟩 1.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은 나의 최고선”
▪︎ 최고선 = 하나님 자신
-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최고선(summum bonum)은 하나님 그분 자체입니다.
- 이는 그리스-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던 이데아의 최고자, 곧 불변하고, 자족하며, 완전한 선의 실체가 개인적 인격자인 하나님 안에서 성취된 개념입니다.
“You have made us for yourself, O Lord,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rests in you.” (Confessions, I.1)
▪︎ 인간의 행복 = 하나님을 향한 ‘안식’
- 인간은 자기 안에서 최고선을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을 향할 때 비로소 안정과 행복에 이릅니다.
- 이는 기억(memoria), 지성(intelligentia), 의지(voluntas)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통해 영혼의 내면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참여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 요약:
- 최고선: 하나님 그 자체 (완전한 존재, 진리, 선)
- 인간의 길: 영혼의 내면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안에 안식함
- 신앙과 철학의 통합: 플라톤주의의 계승 속에서 신앙과 이성은 조화됨
🟨 2. 키르케고르: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고선이다”
▪︎ 최고선 = 하나님과의 관계(Forholdet til Gud)
- 키르케고르는 최고선을 단순히 “하나님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가 진리로 나타나는 실존의 사건으로 말합니다.
- 하나님은 자기 밖에 있는 대상화된 완전성이 아니라, “내가 믿음으로 만나는 인격적 실존의 진리”입니다.
▪︎ 인간의 실존 =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감
-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실존적 과정 속에서, 비로소 최고선과 연결됩니다.
- 이 관계는 본성적 인식이나 이성적 사색이 아니라, 도약(spring), 결단(beslutning), 고독, 사랑과 믿음을 통해 수립됩니다.
📌 요약:
- 최고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사랑과 믿음의 실존
- 인간의 길: 자기를 상실하고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자신을 얻는 존재
- 신앙과 철학의 긴장: 이성은 유보되고, 믿음은 역설 속에서 형성
🟥 결정적 차이: 내면의 질서 vs 실존의 고통
비교항목 | 아우구스티누스 | 키르케고르 |
최고선의 정의 | 하나님 그 자체 (존재론적 완전성) |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실존 |
철학과의 관계 | 신앙과 이성의 조화 (플라톤주의 통합) | 신앙은 이성을 넘어서며, 역설과 도약을 포함 |
인간의 구원 방식 | 내면의 질서 회복을 통한 신적 참여 | 실존적 결단과 믿음 안에서 자기 형성 |
사랑의 성격 | 의지의 질서화된 방향 설정 (ordo amoris) | 모든 것을 믿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역설적 선택 |
진리 인식 | 영혼의 구조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 | 진리는 생성되며, 믿음으로만 주어짐 |
🟢 한 문장 요약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 안에 안식하는 존재’로서 최고선을 말하고, 키르케고르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존재하는 실존’으로서 최고선을 말합니다.
🌿
이 비교를 통해 두 사상가는 “최고선은 하나님이다”라는 동일한 고백을 하지만, 하나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하나님, 다른 하나는 실존적 관계로서의 하나님이라는 서로 다른 지평에서 그 개념을 전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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