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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시기의 작품/기독교의 훈련

기독교의 훈련, 편재와 성찬 설명

by 엉클창 2025. 5. 16.

2부 B, 실족의 가능성, 영역본 100쪽

man har udviklet en Lære om Christi Legemes Ubiqvitet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성에 대한 교리가 발전되었습니다.

이는 루터교의 “편재설(Ubiquitetslære)”, 곧 그리스도의 몸이 어디에나 임재할 수 있다는 교리를 가리킵니다. 이 교리는 루터교 전통에서 발전된 것으로, 성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임재하며,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동시에 땅에서도 성찬의 요소들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 신학적 배경

  • 이 교리는 communicatio idiomatum(속성 교통) 교리에 기반합니다. 이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단일 인격 안에서 결합되어, 신적 속성이 인성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 그에 따라 루터는, 예수의 인성조차도 “원한다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 보며,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 속에 “그의 참된 몸과 피”가 “in, cum et sub”—즉 안에, 함께, 아래에 임한다고 주장합니다.
  • 루터는 이를 통해 가톨릭의 화체설(transsubstantiatio), 츠빙글리의 기념설, 칼뱅의 영적 임재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실재 임재론(Realpræsens)**을 확립합니다.

 

📚 문헌적 근거

  • 이 교리는 루터파 최후의 신조 문서인 **《Formula Concordiae》(1577–78, ≪일치신조≫)**에서 결정적으로 정리되며,
  • 제7조 “성찬에 대하여” 항목의 Solida Declaratio 7.4와 7.35 등에 상세히 언급됩니다.
  • Karl Hase의 ≪Hutterus redivivus oder Dogmatik≫ §123(1837)에서는 이를 체계적으로 요약하며,
  • 다음과 같은 핵심 문장을 포함합니다:

 

“브레드와 와인은 남아 있으나, 그리스도는 그의 인간적 본성에 따라 원하시는 곳 어디에나 계실 수 있으며, 그는 외적 표징 안에서, 함께, 그 아래에 자신의 참된 몸과 피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전달하신다.”

 

  • 키르케고르는 H.N. Clausen의 조직신학 강의 노트(SKS 19, 44f.)에서도 이 논의를 주석하며 비판적으로 인용합니다.

 

❗ 키르케고르의 비판적 입장

 

키르케고르는 이 ubiquitetslære를, 요한복음 6장에 나타난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말씀을 실존적 긴장 속에서가 아니라 교리적으로 정당화하여 실족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해석된다고 비판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예수의 말씀은 믿을 것인가, 실족할 것인가를 요구하는 역설적인 실존의 자리여야 한다.
  • 그러나 편재설은 이를 하나의 교리적 안전망으로 삼아, 실존적 결단 없이도 신앙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낳는다.
  • 결과적으로 기독교 사회의 성례전 이해는 실족의 구조를 제거하고 감상적 교리로 전락한다.

 


성찬 관련 신학 개념 비교

 

 

🕊️ 성찬론 비교표: 로마 가톨릭 vs 루터 vs 츠빙글리 vs 칼뱅

구분 로마 가톨릭 (화체설) 루터 (실재 임재 & 편재설) 츠빙글리 (기념설) 칼뱅 (영적 임재설)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 변화(transsubstantiatio)– 빵과 포도주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됨 실재 임재(real presence)–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 안에, 함께, 아래에 실제로 현존함 기념(symbol)– 성찬은 단지 상징적 기념 행위 영적 임재(spiritual presence)–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실제 연합되지만 물리적 임재는 아님
신학적 기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구분 (형상은 유지되며 질료는 변함) communicatio idiomatum– 신성과 인성 간 속성 교류그리스도의 인성이 편재 가능함 상징주의적 성경 해석– 요 6장은 비유적 언어 성령의 중재를 통한 신앙적 참여– 물리적 변화 없음
신자의 수용 여부 믿는 자만 유익– 그러나 실체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짐 믿든 안 믿든 모두 수용함– 하지만 믿는 자만 유익하게 됨 기억과 감사 중심– 수용 여부는 내면적 태도에 달림 믿음 있는 자에게만 영적 임재
목적과 기능 속죄 은총의 재현 및 은혜 수여 행위 은혜의 수단, 죄 사함과 믿음 강화의 통로 공동체적 기억과 신앙 재확인 신앙의 유익, 교회 공동체의 연합 강조
실족 가능성 (SK적 관점) 신비성 강조로 실족의 긴장은 간접적으로 유지 실존적 실족 제거됨– 교리화와 편재설로 역설적 구조 무마 실족 없음 – 인간 중심 해석으로 역설 구조 사라짐 실존적 결단 여지 있음– 그러나 여전히 논리적 구조 우위

 


 

🧩 키르케고르의 비판 핵심 (요약)

  • 루터: 기독교 사회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ubiquitetslære’로 체계화함으로써 실족의 가능성 없이 믿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함.
  • 츠빙글리: 그리스도의 실재를 제거한 채 기념적 의미만 강조함으로써 역설 자체를 지움.
  • 칼뱅: 비교적 균형 잡힌 시도지만, 여전히 실존적 긴장보다는 교리적 논리가 앞섬.
  • 가톨릭: 신비주의적 요소가 실족의 구조를 감싸 안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화된 형이상학적 설명으로 인해 실존의 결단은 약화됨.

 


 

📌 결론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성찬은 단순한 기억이나 은혜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인간으로 말씀하신다”는 역설이 지금 여기에서 다시 발생하는 자리이다. 즉,

 

“당신은 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겠는가?” “그 앞에서 믿겠는가, 실족하겠는가?”

 

그 선택의 실존적 결단이야말로 진정한 성찬의 자리이며, 그 자리는 어떤 교리 체계로도 포획될 수 없는 고난의 신비이자 믿음의 격렬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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