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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시기의 작품/기독교의 훈련

기독교의 훈련 2부 B의 첨언 해설, 영역본 102쪽

by 엉클창 2025. 5. 16.

 

[기독교의 훈련] 2부,   B의 첨언에서

이러한 상태는, ‘기독교적인 것’이 철학적, 신학적 사변(speculativ Begriben)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대신, 오히려 기독교를 죽이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실족의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신 분이라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는 그분보다 교수직에 앉아 있는 신학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의 도움 없이도 기독교가 세상에 왔고, 이제는 그 신학자들의 도움으로,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다시 사라져버릴 수도 있겠군요.


det Christeliges Værge … Forargelsens Mulighed :

이 표현은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1849) 제2부 A장 1절의 첨언(tillægget)에서 명시적으로 말한 바를 참조합니다. 해당 본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기독교적인 것의 결정적 기준은 ‘부조리(the Absurd)’, ‘역설(Paradox)’, 그리고 ’실족의 가능성(Forargelsens Mulighed)’이다. 이 기준이 기독교적인 것의 모든 규정 안에서 드러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왜냐하면 ‘실족’은 기독교적인 것을 모든 철학적 사변(speculation)으로부터 보호하는 울타리이기 때문이다.”(SKSK 11, 196쪽)

 

🔍 즉, 실족의 가능성이 없다면, 그 “기독교적인 것”은 더 이상 역설도 아니고, 신적 진리도 아니며, 철학적으로 “이해 가능한 개념 체계” 속으로 환원되어 버립니다.

 


 

🧠 ‘spekulative Begriben’ (사변적 인식) 비판: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speculation’은 단지 철학 일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당대의 조직신학, 특히 H.L. 마르텐센(H.L. Martensen)의 『기독교 교의학(Den christelige Dogmatik)』을 직접 겨냥합니다. 마르텐센은 이 책 33항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의학의 과제는 기독교적 통찰(Anskuelse)을 내적 통일 속에서 이해 가능한 이론 체계로 전개하는 것이다. 단순한 설명적 이해(explicativ Begriben)로부터 시작해서, 결국엔 존재 근거와 필연성을 묻는 사변적 인식(speculative Begriben)으로 향한다.즉, 단순히 ’그렇다(It is so)’라고 하지 않고, ’왜 그런가(Quare)?’를 묻는다.”

 

마르텐센은 이러한 방식으로, 신앙의 내용을 철학적 안티노미(모순 대립)를 통해 종합하려고 시도하며, 이는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신앙을 파괴하는 철학화의 전형적 예시였습니다.

 


 

📌 요약: 키르케고르 vs 사변적 신학

구분 키르케고르 마르텐센 (사변적 신학)
신앙의 기준 실족의 가능성, 역설, 부조리 이해 가능성, 내적 통일성, 이론 체계
기독교적 진리 철저히 실존적·역설적·결단적 개념적으로 조화롭고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함
실족의 기능 신앙을 사변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패 개념적 통합을 방해하는 논리적 장애물

 


 

🔔 결론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실족의 가능성’은 기독교를 ‘철학’과 구별짓는 최후의 경계선이며,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자는 반드시 이 실족의 벽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신학이 이 벽을 뛰어넘어 이해하고 설명하려 드는 순간, 기독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고, 바로 그 점에서 그는 기독교 사회와 조직신학 전통 모두에 대하여 가장 급진적인 실존적 저항을 선언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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