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의 실존적 실족 개념, 불트만의 비신화화와 역사적 예수 회의, 그리고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의 『예수와 그 목격자들 (Jesus and the Eyewitnesses)』은 서로 다른 시대와 방법론을 따르지만, “예수를 어떻게 만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아래에 세 입장을 표로 정리하고, 그 차이점과 연결성을 분석합니다.
📊 비교표: 키르케고르 vs 불트만 vs 보컴
구분 | 쇠렌 키르케고르 | 루돌프 불트만 | 리처드 보컴 |
핵심 관심사 | 실존적 신앙과 실족의 역설 | 역사적 예수의 불확실성, 케리그마(복음 선포) 중심의 비신화화 | 사도적 증언의 신뢰성, 목격자 전승 복원 |
예수와의 관계 | ‘동시대성(Samtidighed)’ 속에서 만나는 인간 예수를 통한 실존적 실족과 믿음의 결단 | 역사적 예수는 알 수 없으며, 케리그마(복음의 선포된 내용)만이 신앙의 토대 | 복음서는 1차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반한 역사적 기록이며, 예수는 ‘우리 눈앞에 있었던 분’ |
실족(forargelse)의 의미 | 한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하는 데서 발생하는 실존적 충격 | 실족 개념은 언급되지 않음. 대신 신화를 제거한 선포만이 신앙의 실질로 작용 | 실족보다는 기억된 예수의 구체성을 강조: 역사적 친근감 속의 권위 있는 인물 |
신앙의 출발점 | 실족의 가능성을 통과한 후의 실존적 결단 | 역사적 예수에 대한 회의와 분리 후, 신화 제거된 복음 메시지 | 역사적 예수와의 실제 접촉성과 기억된 증언 |
복음서 해석 태도 | 실존적 해석 강조. 복음서의 사건은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사건 | 복음서는 신학적 문학 장르, 역사적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음 | 복음서는 목격자들이 기억한 사건에 근거, 문학적 신뢰 가능성 강조 |
기독교 사회 비판 | 실족을 제거한 교리적 기독교는 자기기만(Phantasteri) | 교회는 신화를 보존했지만, 그것은 신앙을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음 | 교회 전승은 단절이 아닌 목격자적 연속성으로 이해됨 |
🔍 세 입장의 핵심 차이 분석
질문 | 키르케고르 | 불트만 | 보컴 |
예수를 어떻게 아는가? |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라 말하는 인간’ 예수를 직면함으로써 | 복음서가 아니라 케리그마의 메시지를 통해 | 복음서 안에 보존된 1차 증언을 통해 |
믿음은 어디서 생기는가? | 실족을 넘어서려는 실존적 결단에서 | 역사적 자료가 아닌 신화 제거된 복음의 선포에서 | 목격자들의 직접 증언에 기반한 역사적 실재감에서 |
실족의 가능성에 대한 이해 | 신앙의 전제 조건, 피할 수 없는 통로 | 언급 없음 (비신화화는 실족의 가능성도 제거) | 실족보다는 접근 가능한 예수의 친밀성과 신뢰성 강조 |
📌 키르케고르와의 비교 핵심
- 불트만은 실존주의 영향을 받았지만,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실존적 직면은 포기합니다.→ 키르케고르처럼 실존을 강조하면서도, 실족의 구조는 제거합니다.
- 보컴은 실존보다는 역사적 연속성과 목격성의 신뢰를 복원합니다.그리스도와의 구체적 동시대성 회복이라는 점에서는 놀랍게도 키르케고르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역설과 결단의 자리는 강조되지 않지만, 그리스도와의 구체적 동시대성 회복이라는 점에서는 놀랍게도 키르케고르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 정리
키르케고르 | 불트만 | 보컴 |
실존과 역설 | 케리그마와 비신화화 | 역사와 목격자 |
- 키르케고르: “믿음은 실족을 통해서만 도달된다.”
- 불트만: “신화는 제거되어야 하며,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선포의 배경이다.”
- 보컴: “복음서는 목격자들의 기억이며, 예수는 실제로 우리 눈앞에 계셨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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