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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기독교의 훈련

선을 행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

by 엉클창 2025. 12. 22.

이 부분은 영역본 그리스도교의 훈련 115쪽 마지막 문장을 참고하라.

Practice in Christianity, 115

"To be punished because one does theh good."


 

1. 글라우콘의 문제 제기: “정의는 왜 선택되어야 하는가?”

플라톤의 국가 제2권에서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일부러 극단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이것은 자신의 견해라기보다, 정의를 옹호하는 논증을 끝까지 몰아붙이기 위한 도발입니다. 글라우콘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의가 정말로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면, 왜 사람들은 정의로워지기를 원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 그는 두 가지를 분리합니다.

  1. 정의로워 보이는 것 (τὸ δοκεῖν δίκαιος εἶναι)
  2. 실제로 정의로운 것 (τὸ εἶναι δίκαιος)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사람들은 정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처벌이 두렵고 명성이 필요해서 정의를 택한다.
  • 만약 처벌도 없고, 명성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누구도 정의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2. “완전히 정의로운 자”의 운명 (글라우콘의 극단적 가정)

그래서 글라우콘은 사고실험을 제시합니다.

A. 완전히 부정의한 자

  • 실제로는 악함 그러나 완벽하게 정의로운 사람처럼 보임
  • 권력, 명예, 행복을 모두 누림

 

B. 완전히 정의로운 자

  • 실제로는 정의로움 그러나 완벽하게 부정의한 사람처럼 보임
  • 결과는?

 

여기서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채찍질당하고, 고문당하고, 투옥되고, 눈이 뽑히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 이 대목이 키르케고르가 주목한 부분입니다. ‘선을 실제로 행하는 자는 세상에서 파멸당한다’는 통찰이기 때문입니다.

 


 

3. 그렇다면 글라우콘의 결론은 무엇인가?

⚠️ 중요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 글라우콘의 결론: “그러므로 정의를 실행하면 안 된다”
아닙니다.

 

글라우콘은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만약 당신이 정의 그 자체가 좋은 것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정의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즉,

  • 글라우콘은 정의를 공격하는 사람이 아니라
  • 정의를 구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반론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4. 소크라테스의 입장: 정의는 ‘영혼(soul)의 질서’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길고 단계적입니다(《국가》 전체의 논증). 핵심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정의는 외적 보상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

  • 정의란 👉 각 부분이 제자리를 지키는 영혼의 질서
  • 부정의는 👉 영혼의 내적 분열과 혼란

 

2) 외적으로 파멸해도, 정의로운 영혼은 손상되지 않는다

  • 채찍질당하고 오해받고 십자가에 달린다 해도 👉 그의 영혼은 더 나아진다, 더 망가지지 않는다.

 

3) 반대로 부정의한 자는 성공해도 이미 불행하다

  • 권력과 명예를 누려도 영혼은 이미 병들어 있음

👉 그러므로 정의는 보상 때문에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위해 선택되어야 한다.

 


 

5. 키르케고르와의 연결: “선을 행했기 때문에 처벌받는다”

이제 왜 키르케고르가 이 대목을 끌어오는지 분명해집니다.

  • 글라우콘의 사고실험“선을 실제로 행하면 파멸당한다”
  • 키르케고르의 ‘실족의 가능성’“선을 행했기 때문에 박해받는 자기모순”

둘 다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 선은 외적 성공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 진리는 세상에서 보상받지 않는다
✔ 그래서 인간은 ‘보이는 정의’로 도망칠 것인가, ‘실제 정의’를 택할 것인가의 선택 앞에 선다

 


 

6. 결정적 차이: 소크라테스 vs 그리스도

마지막으로,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
    • 정의를 위해 고난을 감수함
    • 모범(Paradigme)이지만 신적 요구는 아님
  • 그리스도:
    • 자기 자신이 진리
    • 고난이 선택이 아니라 구원의 방식
    • 여기서 실족의 가능성이 절정에 이름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 이성의 극한까지 갔고, 그리스도는 그 극한을 넘어서는 실존적 요구로 오신다.

 


 

요약 한 문장

  • 글라우콘: 정의가 정말 가치 있다면, 최악의 경우에도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도발함
  • 소크라테스: 정의는 보상이 아니라 영혼의 진리라고 응답함
  • 키르케고르: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 문제가 ‘실존적 결단’으로 폭발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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