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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

인공지능과 키르케고르(1)

by 엉클창 2020. 1. 22.

이 글은 이북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해제입니다. 

이제 지금부터는 키르케고르의 새와 백합의 의미를 기술사회와 연결지어 해석해보려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초연결이지요. 그동안 SNS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사람과 사물, 심지어는 사물과 사물 간에도 인터넷이 연결되고 모든 것은 네트워크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을 일컬어, 호모 커넥투스(Homo Connectus)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빛의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데이터들이 생산되고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이야말로 가장 각광받는 기술 중에 하나입니다. 데이터 패턴을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고 통계적 분석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죠. 많은 분야에서 아마도 예측 가능한 미래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 수 있고, 실제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초연결사회는 모든 것을 연결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이런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위치에 서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키르케고르의 작품인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첫째,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보라”는 말은 결국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완전한 단절이 있을 때만 인간 본연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절을 요구하는 것이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초연결와 연결지어 해석해본다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초연결사회에서 “이탈”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둘째, 단절을 선언해야 하는 이유는 “비교”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처음에 7일 동안은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곧, “침묵”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말을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욥이 “스스로”를 비교했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과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 사회에서는 비교의 문제를 제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비유를 합니다.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에는 “인간적인 비교”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인 것이 무엇인지 더 본질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새와 백합과 닮은 사람이 있다면, 아기라는 겁니다. 아기가 있는 곳에서는 마치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겁니다. 

초연결 사회에서 이런 “단절”을 통해 무엇을 깨닫는가? 

무엇보다 이런 단절을 통해 세계 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인간적인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런 자유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생각이 “투명”해집니다. “투명성”은 키르케고르가 강조하는 중요한 사상 중에 하나입니다. 나중에 설명을 드릴 예정입니다. 새와 백합 역시 “투명성”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SNS를 통해 빛의 속도로 소통을 하고 있지만 수많은 글들을 통해서 비교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인터넷의 발전이 많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에는 전혀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해서 생기는 것도 맞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문제들은 외형적 문제라기보다 점점 더 우리의 정신의 문제, 내면의 문제로 깊어져 간다는 겁니다. 외형적인 문제, 삶의 불편함의 문제는 인터넷으로 오히려 잘 극복해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요?

세계는 초연결로 하나의 “지구촌”을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왜 외로운가요? 왜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더욱 이질감을 느끼는가요? 왜 세상에서는 홀로인 것처럼 느끼는가요? 

키르케고르는 이런 사람들을 들로 초청합니다. 그리고 백합을 소개합니다. 복음의 명령대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백합, 그냥 스쳐지나갔던 백합을 “봅니다.” 그때 복음의 초청에의해 들로 간 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아무도 가꾸지 않은 백합, 아무도 돌보지 않은 백합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정원사가 가꾼 정원의 희귀한 꽃은 정원사가 가꾸고 물을 주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무도 가꾸지 않는 백합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백합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동안, 그는 세상일을 “망각”하고 세상과 “단절”되는 경험을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자기 망각”입니다. 

그때 그가 깨닫는 사실은 누군가 백합을 가꾸지 않았다면,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이고,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백합이 그토록 아름답고 버림받지 않는 것처럼, 세상에서 버림받는 것처럼 보이는 관찰자 역시 버림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위한 첫 번째 “자리”입니다. 강화의 서문에서 말한 “좋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이 장소를 발견하기를 소망해봅니다. 다음에 이어서 말씀드립니다. 

 

팁. 강화의 서문은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읽었을 때만 의미가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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