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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기의 작품

아침 관찰

by 엉클창 2020. 4. 8.
  • The Morning Observations in Kjøbenhavnsposten No. 43
  • Kjøbenhavnspostens Morgenbetragtninger i Nr. 43
  • B
  • 1836
  • KW1, SKS13, SV13, Kjøbenhavns flyvende Post, Interimsblad, 43, February 18, 1836

첫 번째 시기: 청년 시기의 작품(1834-42년)

<Kjøbenhavnsposten No. 43>에서의 아침 관찰The Morning Observations In Kjøbenhavnsposten No. 43

키르케고르의 두 번째 출판된 기사는 언론, 특히 Kjøbenhavnsposten에 관한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여러 신문에 평론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해 평생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언론을 합법적인 소통의 기관으로 불신하는 것은 여러 가지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언론이 개인의 목소리라기보다는 대중의 목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 목소리를 후년에 큰 회의와 빈정거림으로 보았는데, 비록 기술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군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군중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진리는 오직 개인으로서, 특히 하나님 앞에 있는 개인으로서만 진술되고 실천될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생전에 세 번의 학문적 싸움을 벌였는데, 이것이 처음이었다. 두 번째는 이른바 1845년의 코르사르 사건일 것이다. 마지막 싸움은 소위 "기독교 세계에 대한 공격"이 될 것이다. 이 첫 번째 싸움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자유주의 언론 <Kjøbenhavnsposten>(아마도 레만)에서 익명의 5부 기사 
  2. 키에르케고르의 <Kjøbenhavns flyvende Post>("아침 관찰The Morning Observations")에서의 응답 
  3. <Fædrelandet>에서의 요하네스 헤이지의 반박
  4. 키르케고르의 <Kjøbenhavns flyvende Post>("Fædrelandet(조국)의 논쟁에 관하여")에서의 응답 
  5. <Kjöbenhavnsposten>의 올라 레만Ola Lehmann이 자신의 이름으로 반박 
  6. 키르케고르의 <Kjøbenhavns flyvende Post>("올라 레만 씨에게")에서의 반박 

레만과 헤지는 당대의 존경받는 작가였고, 키르케고르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교류에서 키르케고르의 동기 중 하나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는 것이다. 이 교류의 초기 부분 전체에서, 전투적인 작가들은 익명으로 남아있다. 오를라 레만의 두 번째 글과 그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응답이 있기 전까지는 이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지 않았다.

그의 익명의 기사에서, 레만은 모든 사람들이 결국 실수를 한다는 방어와 함께 이따금 있었던 실수에 대해 언론을 옹호했다. 키르케고르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의 여명"와 같이 조롱하기 쉬운 레만 기사의 특정 위치뿐만 아니라, 그러한 약한 주장을 파악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따라서 Kjöbenhavnsposten이 어떻게 자신의 집을 정리했는지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서 말하고 싶어하고 모든 지적 커뮤니케이션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고백confesso[인정]에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Kjøbenhavnsposten에 대해 신랄하고 실수를 범한다고 말할 때, 확실히 고백in confesso[인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신랄하고 더 많은 실수를 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7).

키르케고르는 생각에서 성숙해지자 인간을 정치적 존재로 보기보다는 정신적인 존재로 보게 되었고, 따라서 오로지 정치적이었던 모든 개혁에 저항했다. 이 때문에 그는 종종 보수주의자로 여겨져 왔다. 키르케고르에게는 신학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줄어들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다, 확실히 Kjöbenhavnsposten은 개혁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개혁 노력을 패러디한 것이다...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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