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tes on Schelling's Berlin Lectures
- 1841-42, published posthumously
- KW2, SKS13, Søren Kierkegaards Papirer
첫 번째 시기: 청년 시기의 작품(1834-42년)
셸링의 베를린 강의에 대한 노트Notes On Schelling's Berlin Lectures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으며, 한 번은 아버지의 생가를 순례하고, 네 번은 베를린으로 갔다.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조셉 셸링(1775-1854)의 베를린 강의를 크게 기대했다. 그는 당시 매우 영향력 있는 헤겔주의에 대한 셸링의 공격에 매우 기뻐했다. 키르케고르 자신도 전체 작품을 통해 헤겔주의에 반대했다. 그가 나중에 교회를 공격한 것은 부분적으로 마르텐센의 고착된 헤겔 신학에 대항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강의 중에서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철학과 현실성의 관계와 관련하여 "현실성actuality언급했을 때, 엘리자베스에서처럼 사상의 태아 아이는 내 안에서 기쁨으로 뛰어올랐다. 그 후 그가 한 말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일기에서). 이성의 순수과학은 부정적일 뿐이다. 실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실존도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상 존재하는 어떤 신을 전제로 하는 계시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런 이성의 과학은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알 정도로 만들어져야만 완성되지만, 이것은 적어도 가능성으로서 긍정적인 것을 자신의 외부에 갖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이 빨리 오지 않으면 부정적인 것은 쉽게 가려지게 되고, 논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을 빼앗기게 된다(344쪽)
나중에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그는 흥분을 잃었고, 그 자료가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런 반헤겔주의가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켰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셸링은 광범한 의미와 집중적인 의미 모두에서 끝없는 허튼소리를 한다. 나는 베를린을 떠나 코펜하겐으로 가려고 서두르고 있지만, 새로운 구속에 묶이는 것, 이것은 아니다. 오, 아니다,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도 나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난 셸링에게 빚진 게 있어 나는 여행을 즐긴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Letter 69, p. 239)
'첫 번째 시기의 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러니의 개념(업데이트 중...) (0) | 2020.04.09 |
---|---|
공개 고백 (0) | 2020.04.09 |
기존과 옛 비누 저장고의 싸움 (0) | 2020.04.09 |
여전히 살아있는 자의 신문에서 (0) | 2020.04.08 |
올라 레만에게 (0) | 2020.04.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