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기술

미장아빔(Mise en abyme)

by 엉클창 2022. 2. 21.

 

미장아빔이란?

앙드레 지드(André Gide, 1869–1951)가 1893년 그의 일기에서 사용한 것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미장아빔

(Mise en abyme, Mise en abîme)이라는 용어는 그 의미상 두 기원을 가진다. 첫째, 아빔(abyme)은 문장학(紋章學)에서 유래한 전문용어로서 어떤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그것과 같은 작은 문장을 가리킨다. 둘째, 아빔(abîme)은 ‘심연’을 의미하며 따라서 미장아빔은 말 그대로는‘심연’, 즉 ‘무한반복’ 속으로 던져짐, 무한반복 속에 놓임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때 미장아빔은 마주 보고 있는 거울 속에서 동일한 이미지가 무한히 반복되는 양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어원에 따라 파악한다면 예술사에서 미장아빔은 어떤 이미지가 자신 속에 더 작은 자기 복제 이미지를 포함하게 하는 형식적 기교를 의미한다. 이 경우 더 작은 복제 이미지가 반복해서 되풀이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각 예술에서 미메시스 또는 재현의 원리를 따르는 어떤 예술작품은 자기바깥의 어떤 사물을 지시한다. 따라서 재현대상으로서의 사물과 재현된 것으로서의 예술작품 사이에는 지시-참조(reference) 관계가 성립한다. 그런데 모더니즘 미술, 현대미술에서 예술작품은 더 이상 재현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이론가들은 모더니즘의 예술작품을 분석하면서 자신들의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정립한다.

예컨대 푸코는 마그리트(RenéMagritte, 1898-1976)의 그림들을 예로 사용하여 상사(similitude)가 유사(resemblance)로부터 분리되고 그리하여 실재와 연관이 없는 이미지가 무한히 자기 복제의 놀이를 벌이는 것을 지적하면서 현대회화가 유사성에 기반을 둔 재현과 단절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들뢰즈는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그림들을 통해 회화는 재현할 모델도, 해주어야 할 이야기(스토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현대회화의 비재현주의적 성격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재현의 원리가 포기된다면 어떤 예술작품은 자기 바깥의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성격을 잃는다. 이렇게 되면 예술작품은 단지 자기 지시적(self-referential)인 것이 된다. 따라서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더 이상 현실 세계의 어떤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의 성격을 잃고 그 자체가 일종의 오브제가 되거나, 원본이 없는 시뮬라크르의 반복으로 나타난다.

한편 누보로망 이후의 많은 비재현적 소설들은 재현적 서사, 즉 인물과 행위, 플롯을 제거하고 그저 기호화된 언어를 통한 단순한 묘사만으로 소설을 전개하거나, 실제의 장면과 상상의 장면을 뒤섞어 버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이를 통해 이들 예술작품은 자기 바깥의 실제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반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예술작품들은 자기 반영적 성격을 가지며, 이들은 이 때문에 모방적 재현(회화)이나 서사적 재현(문학)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미장아빔은 재현을 벗어나고자 하는 예술작품의 자기반성, 자기반영의 한 방식으로 채택될 수 있다.

따라서 미장아빔은 전통적 재현의 원리를 포기하는 모더니즘과 또한 그러한 비재현주의를 더 강하게 전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러 예술과 연관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장아빔의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모더니즘 예술 이전에서부터,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서도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비재현적 묘사와 연관하여 그것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작품에서 두드러진다 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