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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인문학

기독교의 아이러니, 크리스천의 이상에 대하여

by 엉클창 2022. 6. 1.

고고학자들은 유물을 발견하기 위해 땅속을 파고 들어갈 때가 있다. 혹은 땅속 동굴로 내려간다. 거기에서 멸종된 동물의 화석을 발견하는 것, 거기에는 어떤 아이러니가 존재할 수 없다. 그 발견된 동물은 현재 살고 있지 않고, 이미 멸종되었다. 지금 현재 살아 있는 동물과는 어떤 관련성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와 기독교의 형성과 발굴의 문제는 이와 같지 않다.
현존하는 기독교와 이와 관련된 기독교적인 것의 형성을 발굴하기 위해, 기독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이것은 최고의 아이러니이다. 이 아이러니는 기독교의 심판인 동시에,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목사와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수천만의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라고 추정되는 사실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를 생각해 보자.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에서의 표현과 구절 속에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하찮은 것, 아이러니하게 말할 수 있는 기교, 이런 것들이 소크라테스적인 아이러니가 아니다. 아니, 소크라테스는 그의 존제 전체가 아이러니이다. 그 당시에 그리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건장한 남자들, 사업가들, 부자들, 가난한 자들 등, 동시대의 모든 인구가, 말하자면 그 모든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소크라테스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즉,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이 되는가?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달리,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상(ideal)'과 관계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그만큼 사람의 이상에 대해 씨름한 자는 없었다. 이에 반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람의 이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산다.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열정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에, 그들의 열정, 그들의 모든 삶은 단지 상상, 소동, 잡음, 분주함과 같은 것을 표현할 뿐이다. 다시 말해, 이런 것들의 가치는 0이거나 0보다 못하다. 이런 사람들이 이상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사용하는 한, 그들의 삶은 0보다 못하다.

자, 그렇다면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독교와 관련된 아이러니는 소크라테스적인 것보다 그 안에 한 계기가 더 있다. 기독교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당연히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여기에서 멈춘다. 그런데 그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자기들이 당연히 크리스천이라고 상상한다. 소크라테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이 되는 것인지 의심했다. 사람이 되는 것, 혹은 사람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는 것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사로잡혔던 것, 그렇게도 소크라테스가 찾았던 것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이상성이었다.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기독교는 다시 물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는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크리스천이 되는가? 혹은 어떤 단 하나의 고백에 의해 크리스천이 될 수가 있는 것인가?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크리스천이 되는가?

우리는 역사에서 이미 배웠다. 기독교가 역사에서 승리했을 때, 그리하여 왕의 권력보다 더 강해졌을 때, 나면서부터 크리스천이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을.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크리스천이 되거나, '하나의 고백'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허튼 소리를 들을 때, 그 사람이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진보할 만큼 완전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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