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63 들의 백합 공중의 새(해제2) 산상수훈은 믿음의 행위를 하기에는 주눅들게 하는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율법은 살인자를 심판하지만, 복음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마5:22-23) 곧, 복음의 잣대에 의하면, 형제를 미워한 자는 이미 살인자다.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복음의 잣대에 의하면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자다.(마5:28) 율법의 요구조건보다 복음의 요구조건이 더 엄밀하다. 인간 중에 누가 이런 잣대로 이 요구조건을 다 지킬 수 있는가!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마5:17) 누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5:18) 한 마디로, 복음은 율법의 요구조건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2020. 2. 16.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해제2) 키르케고르는 선택의 문제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구절까지 확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복된 행복"과 동일시 한다. 복된 행복은 결국 이 강화의 핵심이다. 이는 또한 영원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이 영역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보인다. 반면, 보이는 세상에는 슬픈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자연의 평화는 언젠가는 창백해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복음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한 것을 강조한다. 그는 저 나라와 세상 사이의 반대를 복음이 "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라고 약속함으로써 약간 부드럽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란 남은 음식leftovers에 불과.. 2020. 2. 13.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해제1) 원리 이 강화의 원 제목은 이다. 이 강화는 시작할 때, 염려하는 자가 위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런 저항에서 더 강자가 된다. 위로하는 자는 그를 설득할 수 없고, 위로하려 할수록 그의 마음 문은 더욱 굳게 닫힌다. 따라서 이 강화는 염려하는 자를 다른 사람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꾼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싸움은 망각되고 요새화된 도시 같았던 사람은 이제 항복한 도시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라는 것이 밝혀진다. 염려하는 자는 들의 백합이 결국 내일은 "아궁이에 던져진다"는 생각에 더욱 슬퍼진다. 복음에 등장하는 새는 마태복음 10장 29절에 등장하는 참새처럼 시장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거나 거의 가.. 2020. 2. 9.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영상과 함께 소개합니다. 간단하게 "비교"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2020. 2. 4. 투명성(Transparency, Gjennemsigtighed) 투명성이란 개념은 에서 구체화된다. 이 말은 가명의 저자 안티 클리마쿠스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절망이 완전히 제거될 때, 자기self의 상태를 나타내는 공식은 이렇다: 자신과 자신을 관계하면서 자기이려 할 때, 자기는 자기를 정립하는 힘에서 투명하게 gjennemsigtigt안식한다.1) 이와 같은 표현은 책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2) 투명성에 대한 해석은 이 책의 2부에서 더 명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투명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이런 점에서 죄에 대한 개념도 재정립된다. 안티 클리마쿠스에 의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이방인은 죄를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3)그래서 2부의 시작을 죄란 하나님 앞에서 존재하거나 하나님 개념과 함께 있다고 말한 이유다. 어쩌.. 2020. 2. 2. 하나님은 성령이시다 Gud er Aand, er usynlig, og Usynlighedens Billede er ... Usynlighed 이 부분은 요한복음 4:7-26절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 복음 4장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예배에 대한 개념이 나온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아마도 이 지점을 생각하고 글을 쓴 것처럼 보인다. 배경을 보면, 우물가에 왔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다. 여인은 여기에서 대화하다가 예수님을 "선지자"라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너희는 알지 못하.. 2020. 1. 31. 이전 1 ···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