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1장의 명확한 독해를 위해서 용어정리부터 하고 넘어가보자. 유전죄는 덴마크어로 Arvesynd이고 독일어로 Erbsünde, 영어로 hereditary sin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original sin으로 번역하고, 우리말로는 “원죄”로 번역한다. 하지만 나는 단지 이 말을 원죄로만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하프니엔시스는 1장 1절의 원죄를 다루면서 유전죄와 원죄를 구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유전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슈말칸덴 신조(The Smalcald Article)였다.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유전죄라는 라틴어 단어는 peccatum haereditarium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원죄”라는 단어는 어거스틴이 사용한 단어로, 라틴어 표현은 peccatum originale이다. 한길사에서는 이 단어를 “근원적인 죄”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원래 이 단어의 의미가 “원죄”이다. 덴마크어로는 oprindelige synd이다.
이 원죄의 개념을 루터가 급진적 해석으로 받아들였고, 칼뱅 역시 이 의미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라틴어로 peccatum originale를 원죄로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한다. 칼뱅은 이 라틴어 단어를 주석할 때, 인용한 성경 구절이 로마서 5장 12절이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칼뱅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석할 때, peccatum originale를 “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이되었다(in omnes propagatum ess peccatum)”고 해석한 것이다. 유전죄에 대한 급진화된 루터의 이해는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앙고백 제2조에서 표현된다. 제2조 전문은 아래와 같다.
제2조 원죄에 관하여(De peccato orginis)
우리 교회는 또한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모든 인간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죄 가운데 잉태되고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악한 정욕과 그 경향성이 가득 차 있고, 본성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참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이런 동일한 타고난 질병과 원죄(original sin, “유전죄”를 의미함)가 참으로 죄입니다. 또한 이 원죄가 침례(세례)와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모든 자를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게 합니다.
어쨌든, 나는 여기에서 유전죄와 원죄를 구별할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구별했을 때, 하프니엔시스가 강조하려는 점은 유전죄다. 전통적인 교리적 측면에서 설명하면, 유전죄는 이미 인류에 상속된 죄로, 몇몇 성경의 구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첫째로, 창세기 3장의 타락의 이야기이다. 둘째는 시편 51편 5절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는 구절이다. 셋째는 로마서 5장 12-14절 말씀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어거스틴은 심지어 성적인 행위에서조차 죄가 유효하다는 교리를 만들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창조 행위에도 죄가 유효하다. 모든 인간이 죄 중에, 죄와 함께 태어나기 때문에 모든 개인은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했다. 모든 인간이 죄의 속박 속에 있으므로, 신인협력으로 그들의 구원을 발생시킬 수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에 달려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교리적으로 말하자면, 타락에서 아담의 죄는 최초의 죄라고 말한다. 이 최초의 죄와 함께 죄(sin)와 죄성(sinfulness)이 세상에 들어왔다. 다른 모든 인간의 죄는 세대를 통해 전가되고 유전된 죄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하프니엔시스는 이런 어거스틴과 루터의 전통적인 원죄의 교리를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최초의 죄” 혹은 “원죄(original sin, peccatum originale)”가 아담의 죄가 아니라 각각의 개인의 “최초의 죄”라고 주장한다. 저 각 개인의 최초의 죄를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나중에 더 깊이 있게 살피겠지만, 이런 측면은 “질적 도약(qualitative leap)”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나는 이것이 로마서 5장 12절의 주석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죄가 곧 아담의 죄인가? 다시 말해, 아담의 행위는 최초의 죄이고, 원죄를 설명하면, 그것은 아담의 죄인가? 하프니엔시스는 이런 의견에 반대한다. 따라서 로마서 5장 12절을 고려할 경우, “아담의 행위”를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이 아담처럼” 죄가 세상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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