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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화/이방인의 염려

02 변태 중의 최고의 변태

by 엉클창 2021. 1. 8.

 

곤충은 변태를 한다. 처음에 알에서 성장하여,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가 되고 결국 성충이 된다. 포유류나 조류, 파충류에서처럼 기본적인 몸의 구성은 변하지 않고 각 부분의 발달에 따라 연속적으로 형태가 변화해서 성체가 되는 경우는 변태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변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변화를 겪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비가 있다. 나비는 처음에 알에서 태어나지만, 성장과정에서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된다. 나비와 번데기는 전혀 다른 상태의 변화다.

곤충의 변태과정

또한 변태라는 용어는, 이상 성욕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개 변태 성욕자를 줄여 변태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변태라는 용어를 다른 데에 적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계에도 곤충에서 일어나는 변태보다 더 큰 변태를 원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변태 중의 최고의 변태로 부르고 싶다. 이 변태는 또한 코믹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큼 영원한 분은 없다. 하나님 다음으로 자기 자신만큼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영원한 존재로 남는지 안다. 문제는 이 자기 자신의 이런 확신, 하나님 다음으로 영원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을 얻은 바로 다음 순간에,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다시 말해, 세상의 가치, 세상의 문화, 세상의 관점에서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이 되고자 열망한다. 

하나님 다음으로 영원한 존재가 바로 자기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자가, 그 다음 순간에 자기와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 바로 이것이 코믹이자, 변태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 앞에서 “투명한 자기”가 되지 못했을 때이다. “하나님 앞에서” 더 진지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성찰하지 못했을 때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정확히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배운 대로, 세상의 잣대로 세상이 원하는 “자기”가 된다. 이런 변화는 특히 교회 속에 존재하는 이방인들의 변화로 모든 변태 중에 최고의 변태다. 

최근에 <정인이 사건>으로 세상이 난리다. 특히 기독교계에서 이슈가 크다. 그들은 소위 그리스도인이었고, 부모도 목회자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어떤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이미 그런 이야기들은 인터넷만 치면 다 나온다. 다만, 그들이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나름 이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으로 조금 더 “하나님 앞에” 있는 개인임을 자각했다면, 그래서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더욱 “그리스도를 닮는 데에” 진지해졌다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불쌍한 아기를 수단삼아 이용할 수 있는가? 하나님 다음으로 영원한 자가 자기 자신이라 인정하고는, 그 즉시 세상이 원하는 “자기”가 되는 데에 광기를 낼 수 있느냔 말이다. 

원래 우리는 기독교 밖에 존재하는 자였다. 한 마디로, “순수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후, “완전한 변태과정”을 거쳐 거듭났다. 곧,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 무슨 변화인가!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 “지금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자기 자신이 되기보다 세상의 기준과 잣대로 다시 전혀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한 번 상승하여 변화 한 후, 다시 타락하여 하강하는 이런 변화! 이것은 이 지상에서 가장 끔찍한 변화로 나는 이런 변화를 변태 중에 최고의 변태라 부르는 것이다. 결국 그런 사람은 괴물이 되고 만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하지만 무늬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세상의 가치와 문화를 따른다. 교회 안에 있는 이방인들이다. 이 사람들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런 상태로 죽었다면, 단 한 번도 자기가 누구인지 몰랐을 뿐더러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죽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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