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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기도

정의가 아닌 사랑이 심판인 기도

by 엉클창 2024. 11. 13.

 

 

▣ 출처: 이 작품은 1849년에 출판된 『권위 없이』(Without Authority)에 있는 “금요일 성찬 때의 두 개의 강화”에서 첫 번째 강화의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은 이 세상에 심판하러 오지 않았습니다.(요12: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지 못한 사랑이 됨으로,
세상에 대한 심판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주님 말고는, 누구에게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 그러나 우리가 적게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친 심판이 당신이 사랑이라면,
그때 우리는 누구에게 가오리까?(요6:68)

당신께 가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가오리까?
오, 이 암담함이여!

당신이 실제로 우리를 긍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가오리까?
오, 이 절망이여!

주님과 사랑에 대한 우리의 큰 죄를,
적게 사랑함으로 많은 죄를 지은 우리를,
주께서 용서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가오리까!




Lord Jesus Christ, you who certainly did not come to the world in order to judge, yet by being love that was not loved you were a judgment upon the world. We call ourselves Christians; we say that we know of no one to go to but you-alas, to whom then shall we go when, precisely by your love, the judgment falls also upon us, that we love little? To whom, what hopelessness, if not to you! To whom, what despair, if you actually would not receive us mercifully, forgiving us our great sin against you and against love, we who sinned much by loving little!


이 기도는 키르케고르가 인간의 죄와 사랑의 결핍, 그리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에 대한 깊은 내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중요한 주제들이 얽혀 있는데, 그 핵심을 하나씩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심판으로서의 사랑

키르케고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니지만, 사랑받지 못한 사랑으로서 세상에 심판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사랑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본질적인 잣대가 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거절당할 때, 그 사랑 자체가 이미 죄의 심판이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그 사랑에 대한 무관심을 고백하며, 그로 인해 스스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자칭 그리스도인의 회개

기도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지만”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이는 단순히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함을 촉구하는 반성입니다.

 

3. 사랑의 결핍과 죄의 고백

키르케고르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당신의 사랑이 곧 우리에게 심판이 될 때”라는 구절에서 인간이 얼마나 적게 사랑하고, 또 그로 인해 죄를 짓는지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인데, 인간은 그 사랑에 온전히 화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사랑을 거절하거나 미온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는 키르케고르가 자주 강조하는 ‘사랑의 부족’이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악으로 나타납니다.

 

4.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간절함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키르케고르는 깊은 절망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절망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갈망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는 자신의 “크게 죄 지은” 상태에서 용서받고자 간절히 예수님을 찾으며, 이것이 곧 절망의 끝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희망임을 나타냅니다.

 

5. 사랑의 실천에 대한 강조

이 기도는 사랑의 실천을 향한 강한 촉구이기도 합니다. 키르케고르는 단순히 신앙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사랑하지 않음으로 인해 예수님께 죄를 짓고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사랑에 대한 믿음을 넘어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이 기도는 키르케고르의 신학적 깊이와 인간 내면의 갈등,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드러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의를 심판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법이나 규칙을 위반했을 때, 사람들은 정의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키르케고르는 사랑 자체가 심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제시함으로써, 심판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어떻게 심판이 될 수 있을지 더 깊이 탐구해보겠습니다.

 

1. 사랑과 심판의 관계

키르케고르의 기도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랑이 심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라면, 그 사랑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사랑 앞에서 자신의 불완전함과 결핍을 자각하게 됩니다. 즉, 사랑의 완전성 자체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심판의 기능을 하게 됩니다. 사랑이 지닌 순수성과 무조건성이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인간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죠.

 

2. 사랑받지 못한 사랑이 심판이 되는 이유

키르케고르는 예수님의 사랑이 거절당할 때 심판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사랑이 단순히 감정적 관계를 넘어서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를 넘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 사랑을 거부하거나 응답하지 않을 때, 그 사랑은 거울처럼 자신들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게 됩니다. 즉,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사람들은 스스로 심판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랑은 그 거절을 통해 인간의 상태를 폭로하며, 그 자체로 심판이 되는 것이죠.

 

3. 사랑의 기준으로서의 심판

정의는 보통 외적인 규칙을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의 심판은 외적인 법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각에 기반합니다. 사랑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결핍을 느끼고, 그로 인해 심판받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랑이 심판으로 기능할 때, 이는 외부에서 내려지는 판결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각과 반성을 의미합니다.

 

4. 사랑이 인간의 자유를 심판하는 방식

키르케고르는 종종 사랑과 자유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사랑이 심판이 될 때, 그것은 억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유를 통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며, 그 사랑에 응답하는 자유도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 안에서 사랑을 거부하거나 무시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로이 거부한 사랑 앞에서 스스로 판단받게 됩니다.

 

5. 사랑이 심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의 실존적 의미

사랑이 심판이 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사랑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인간이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미덕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 결핍을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사랑의 결핍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부족을 나타내며, 이는 영적 심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기보다 스스로 사랑에 응답하지 않은 존재로서의 공허함과 결핍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키르케고르가 제시하는 사랑의 심판은 정죄가 아닌 존재의 투명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의가 외적인 판단과 벌을 통해 심판한다면, 사랑은 인간의 내면에 비추어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볼 수 있게 하는 거울 같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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