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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50

1강 모범에 대하여(새와 백합을 중심으로) 한 마디로 말해, 새와 백합은 보잘것없는 모범, 쓸데없는 모범이다. 이 모범의 보잘것없음은 키르케고르의 간접 전달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나는 키르케고르의 강화 역시 간접 전달의 방식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간접 전달은 성서의 이야기의 부정적 혹은 반전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이런 “부정성”이 궁극적으로 본받아야 하는 요구조건과 관계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 “무(nothing)”과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1) 의 강화는 이 모범을 통해 배우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배우는 조건에 대한 문제이며, 특별히 성서를 이해하고 독해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다. 키르케고르의 작품 중에 가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모범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말한다. 나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사이에는 언어.. 2020. 2. 27.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해제3) 첫 번째 강화는 우리가 새와 백합을 본받을 수 있도록 권면한다. 두 번째 강화는 우리가 그들의 불충분성을 믿음의 모범으로 유념하기를 촉구한다. 또한 하나님-사람을 우리의 "실제적" 모범으로 추천한다. 그렇다면 세 번째 강화는 새와 백합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말하려 하는 것일까? 이상하게도, 새와 백합과 관련하여 세 번째 강화의 가장 강력한 진술은 복음의 요점이 완전히 다른 데에 있다고 제시한 곳에서 나온다. 복음이 권위를 갖고 이야기할 때, 복음은 영원의 진지함earnestness of eternity으로 말한다. 그때 꿈꾸는 것처럼 백합에 대하여 생각할 틈이 없고 그리워하며 새를 따라갈 틈도 없다. 백합과 새에 대한 간결하고 교훈적인 언급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때 그것은 영원eternity이.. 2020. 2. 23.
들의 백합 공중의 새(해제3) 키르케고르는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강화를 13개를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산상수훈 5장 마지막 절은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하심처럼 완전하라고 말한다. 곧,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모범이시다. 분명, 산상수훈 5장은 주님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 왔다고 말한다.(마5:17) 산상수훈 5장까지는 이런 “신적 완전성”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6장은 새와 백합이 모범으로 등장한다. 조금 이상하다. 새와 백합이 우리의 모범이라니! 이런 익살맞은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새와 백합은 우리의 선생으로 봉사한다. 그의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13개의 강화 중에서 첫 번째 강화는 1847년에 등장한다. 에 실려 있는데,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 2020. 2. 16.
들의 백합 공중의 새(해제2) 산상수훈은 믿음의 행위를 하기에는 주눅들게 하는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율법은 살인자를 심판하지만, 복음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마5:22-23) 곧, 복음의 잣대에 의하면, 형제를 미워한 자는 이미 살인자다.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복음의 잣대에 의하면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자다.(마5:28) 율법의 요구조건보다 복음의 요구조건이 더 엄밀하다. 인간 중에 누가 이런 잣대로 이 요구조건을 다 지킬 수 있는가!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마5:17) 누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5:18) 한 마디로, 복음은 율법의 요구조건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2020. 2. 16.
들의 백합 공중의 새(해제1) 단계에 대하여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가?"에는 세 편의 강화가 있다.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가 그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이 세 강화가 심미적으로,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관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첫 번째 강화는 심미적이고, 두 번째 강화는 윤리적이고, 세 번째 강화는 종교적이다.- JP V 5970 (Pap. VIII1 A 1) n.d., 1847 첫 번째 강화에서 새와 백합이 심미적으로 관계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염려하는 자에게 가르치는 것은 만족과 진정한 자유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했을 때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양성과 비교에 사로잡힌 염려하는 자를 기분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모순의 심미적 변증법의 도.. 2020. 2. 16.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해제2) 키르케고르는 선택의 문제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구절까지 확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복된 행복"과 동일시 한다. 복된 행복은 결국 이 강화의 핵심이다. 이는 또한 영원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이 영역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보인다. 반면, 보이는 세상에는 슬픈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자연의 평화는 언젠가는 창백해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복음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한 것을 강조한다. 그는 저 나라와 세상 사이의 반대를 복음이 "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라고 약속함으로써 약간 부드럽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란 남은 음식leftovers에 불과.. 2020.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