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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시기의 작품

한 편의 건덕적 강화

by 엉클창 2020. 5. 2.
  • An Upbuilding Discourse
  • En opbyggelig Tale
  • 1850
  • KW18, SKS12, SV12

다섯 번째 시기: 직접 전달(1848-51년)

한 편의 건덕적 강화An Upbuilding Discourse

키르케고르의 대부분 직접적인 종교적 저술은 "강화discourses"라 불린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키르케고르의 종교적 강화에 대한 개요는 <열여덟 편의 건덕적 강화Eighteen Upbuilding Discourses>를 참고하라.) 이 강화들은 건덕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권위가 없다." <천재와 사도의 차이>에서 서술한 것처럼(이 부분은 <두 개의 윤리-종교적 소론>을 참고하라), 사도는 절대자와 관계가 있는 반면, 그는 천재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시 태그 "권위"를 참고하라. 
키르케고르의 가명 저자를 통한 독특한 공격 계획은 '뒤에서 상처를 주는' 것이었는데, 이는 그의 '경건한 기만(godly deception)'의 일부였다. 그의 철학적인 작품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밀하게 주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에 그의 건덕적 강화는 가명적인 작품들과 함께 동반된 것으로, 직접적이고 종교적이어서 이 작품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종종 철학적 작품들에 비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키르케고르에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키르케고르의 저술 방법을 참고하라.

많은 강화가 동일한 헌사를 공유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나의 선친,
고 미가엘 페더슨 키에르케고어를 기념하여
이 작은 책을 바칩니다." 

이 강화의 제목은 "죄 많은 여인"이며, 누가복음 7장 37절 이후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또한 다른 강화들과 같은 서문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금요일 성찬식 때의 세 편의 강화> 중 하나가 바로 이 본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여성적 시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진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그 시대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이 강화에서 그는 간통죄로 잡힌 이 여인을이 교사라고 주장한다. 

여자가 선생으로, 경건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것은 경건이나 신앙심이 근본적으로 여자다운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일 수 없다. “여자가 회중이 있는 곳에서 잠잠해야 할지라도,”(고전14:34) 그 정도로 가르치지 말아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깊은 경건에 속한다. 따라서 당신은 이 여자로부터 바로 이것을 배울 수 있다.
여자로부터, 당신은 또한 특별한 것(the extraordinary)과 관련하여 겸손한 믿음을 배운다. 의심하며, 수상히 여기며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지?”라고 묻지 않는 겸손한 믿음을 배운다. 마치 마리아가 겸손하게 믿고 말하듯이 말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의 계집종입니다.”(눅1:38)
그녀가 이것을 말했으나 주의하라. 이것을 말한 것은 실제로 침묵한 것이다.
여자로부터, 당신은 올바로 말씀을 듣는 법을 배운다. 마리아에게서 말이다. 그녀가 들은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했다.”(눅2:19) 그리하여 그녀는 먼저 말씀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침묵하면서, 적당한 곳에 말씀을 숨겼다. 물론, 좋은 곳에 있으므로, 말씀, 이 좋은 씨는 “착하고 좋은 마음에 간직된 것이다.”(눅8:15)
여자로부터,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조용하고, 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슬픔을 배운다. 마리아에게서 말이다. 이 일은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일어났다. 곧, 칼이 그녀의 마음을 찌른 것이다.(눅2:35)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다. 선지자에게도 절망하지 않았고, 그 일이 이루어졌어도 절망하지 않았다.
여자로부터, 당신은 꼭 필요한 한 가지 걱정(concern)을 배운다. 나사로의 동생이었던 마리에게서 말이다. 그녀는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마음에 선택하고 그리스도의 발 앞에서 침묵하게 앉아 있었다.(눅10:41-42)
같은 방법으로, 당신 역시 여자로부터 죄에 대하여 올바로 슬퍼하는 법을 배운다. 죄 많은 여인, 그녀의 많은 죄가 오래, 오래 전에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잊혀졌던 여인으로부터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되었다. (번역 초안, 4쪽)

여자의 전통적인 역할은 침묵이었다. 키르케고르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을 지지한다. 이 구절에 대한 각주에서 월터 라우리는 키르케고르가 자신의 죄가 용서되고 잊혀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1848년에 커다란 종교적인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의 죄는 "잊혀졌다"는 진술에 큰 의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때, 무엇이 진지함인가? 생각과 관련하여, 남자는 조금 더 진지한 사상가가 되게 하라. 그러나 느낌, 열정 그리고 결정과 관하여는 여자가 더 진지하다. 자기를 방해하지 않고 생각, 계획에 대하여 의사결정 하는 일은 여자가 더 진지하다. 거의 결정에 도달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지 못 한 채로 있는 것에 관련하여서는 여자가 더 진지하다. 그러나 결정은 진지함이다. 진지함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특별히 경건한 의미에서 또한 특별히 그녀의 죄에 대한 슬픔에 관련하여서는 그렇다.(번역 초안, 5쪽)

키르케고르는 철학적 사변에 극도로 비판적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결단에서 열정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기 때문에, 남자가 사상에 대해 더 진지하다고 해서 여성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자의 생각은 많은 장애물을 만들어낸다. 이 생각은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자는 마음과 생각이 더 혼연일체가 된다. 이것은 "청결한 마음은 한 가지만을 품는다"의 작가로부터 나온 높은 찬사다. 

키르케고르는 강화의 주요 주제를 제안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한 무조건적인 슬픔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됨으로써 그녀처럼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한 가지는 중요하고, 무조건적으로 중요하게 남는다. 즉, 용서 찾기다.

키르케고르는 죄에 대한 슬픔은 드물다고 단언한다.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시달리는 일에도 후회는 흔하지만, 죄에 대한 슬픔에 빠진 일편단심은 드물다. 하지만 <마음의 청결>에서처럼, 우리는 한 가지만을 품어야 한다. 즉 용서다. 죄에 대한 슬픔은 드물다. 그러나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는 것도 드물다. 어느 정도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의 몇 가지 관심사로 돌아간다. 절망에 몰입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염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은 단지 죄에 대해 슬퍼할 때 그렇다. 

죄 많은 여인에게 다른 모든 것은 시시했다. 일시적이고, 세상적이고,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 명예, 존경, 번영, 미래, 친척, 친구, 사람의 의견과 같은 것들. 이 모든 염려들을,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그녀는 가볍게 견뎠다. 마치 그런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염려할 때, 그녀는 단 한 가지만 무조건적으로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번역초안, 8쪽)

키르케고르는 타인에 대한 걱정과 타인을 배려한다는 핑계조차도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과 용서를 구하는 하나의 필요를 피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키르케고르는 하나님은 오직 개인들과만 상대한는 것고 주장한다. 우리의 죄와 용서에 대한 염려는 이기심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자기를 포함하고 있어도 그렇다. 그것은 하나님께 완전한 항복을 수반한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완전한 자아를 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자기 주도 없이는 할 수 없다. 이 여자는 용서에 너무 열중해서,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참석한다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죄에 대해 울기 위해 축제 행사를 이용한다. 게다가, 키르케고르는 그녀의 진정한 회개에는 용서를 얻기 위해 어떤 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포함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봉사를 하겠다고 애원하거나 제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는 두 채무자에 대해 비유를 말하는데, 그 중 한 채무자는 다른 채무자보다 더 많은 빚을 졌다. 

그때 그녀는 그분께서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를 받았다. . . .”
그녀는 이 소리를 듣는다. 그분께서는 더 많은 말을 하신다.
“왜냐하면 그녀는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오.”
나는 그녀가 이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가정해 본다. 그녀를 언급했던 “왜냐하면”이라는 말은 그녀를 방해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찬양을 받는 것은 그녀의 사랑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따라서 나는 그녀가 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가정해 본다. 혹은 아마도 그녀가 이 말을 들었지만 잘못 들었고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오.”
따라서 이것은 그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사랑이 무한하기 때문에,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은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정말이지 이것은 마치 그녀가 말하는 것 같았다.( 번역초안, 11-12쪽)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전혀 한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그는 격려의 말을 남기고 글을 맺는다. 죄인이었던 여자는 속죄 전에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았다. 십자가에 못박힌 뒤에 사는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쉽게 믿을 수 있다. 그분의 행위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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