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인문학54 제1회 본회퍼에게 중요한 인물 키르케고르 이 글은 각주를 포함하고 있어 컴퓨터 화면에서 잘 보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소개 올리겠습니다. 본회퍼 공부는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제1회 본회퍼에게 중요한 인물 키르케고르 쇠렌 키르케고르는 본회퍼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먼저 본회퍼는 키르케고르의 중요한 개념들을 많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1930~1931년에 이미 키르케고르를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바르트와 같은 ‘진정한 기독교적 사고’의 대표자로 지목했습니다.[#보기1 Dietrich Bonhoeffer, Barcelona, Berlin, New York: 1928–1931, in Dietrich Bonhoeffer Works, vol. 10, p. 460.] 또한 약혼녀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키르케고르에 대한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2022. 6. 29. 기독교의 아이러니, 크리스천의 이상에 대하여 고고학자들은 유물을 발견하기 위해 땅속을 파고 들어갈 때가 있다. 혹은 땅속 동굴로 내려간다. 거기에서 멸종된 동물의 화석을 발견하는 것, 거기에는 어떤 아이러니가 존재할 수 없다. 그 발견된 동물은 현재 살고 있지 않고, 이미 멸종되었다. 지금 현재 살아 있는 동물과는 어떤 관련성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와 기독교의 형성과 발굴의 문제는 이와 같지 않다. 현존하는 기독교와 이와 관련된 기독교적인 것의 형성을 발굴하기 위해, 기독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이것은 최고의 아이러니이다. 이 아이러니는 기독교의 심판인 동시에,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목사와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수천만의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라고 추정되는 사실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를 생각해 보자. 소크라테스적.. 2022. 6. 1. 헤겔의 미학 헤겔의 미학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 하십시오. https://blog.naver.com/mbastudy/222355644696 헤겔 (Hegel) 미학 : 예술에서 종교, 그리고 철학으로. 1. 플라톤은 현실 세계의 자연은 피안의 세계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라 생각했다. 플라톤에 따... blog.naver.com 2022. 3. 22. 《메모라빌리아》와 소크라테스의 사상 1. 메모라빌리아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Memorabilia)》은 소크라테스를 알 수 있는 역사적으로 가장 귀중한 문헌이다. 소크라테스를 알 수 있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 플라톤의 《향연》, 《대화편》,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형이상학》이다. 그러나 크네소폰의 《소크라테스 회상(Memorabilia)》이 사실의 소크라테스를 가장 충실히 전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크세노폰이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일반적이고도 전면적인 보고이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들을 신봉하지 않고 새로운 신을 신봉하였으며, 또 청년을 부패시켰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이 죄과는 부당한 것이며, 소크라테스.. 2022. 3. 5. 헤겔의 수 개념, 미분계산의 철학적 정당화 이병철 동아대 철학교수 1.서론 헤겔은 논리학 1권 量 장에서 수 개념에 대한 풍부한 논의를 전개했다. 또한 그는 근대 수학 철학의 핵심적인 문제였던 미분 개념의 확립과 미분 계산의 정당화를 위하여 엄청난 주석을 달아 놓았다. 물론 헤겔의 수 및 미분학에 대한 논의는 무한의 개념과 연관하여 전개되었는데, 일찍부터 그의 무한 개념에 관해서는 많은 해석가들이 주목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논의에서 기초가 되었던 수 및 미분학에 대한 논의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다만 수학사에서 후일 미분학의 원리를 최종적으로 확립했다고 일컬어지는 Karl Weierstass(1815-1897)가 헤겔의 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되고 있을 뿐, 여기에서조차 그가 헤겔의 사고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설.. 2022. 2. 26.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정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여러 부문에 걸쳐서 대단히 큰 것이었으나, 어느 부문 보다도 논리학(論理學)에서 가장 컸다. 고대 말기,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아직도 플라톤이 우월성을 보이고 있었을 때, 논리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권위자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의 이 지위는 중세를 통해 존속되었다. 기독교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부문에서도 우월성을 인정하게 된 것은 13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우월성은 문예부흥 이후에는 대체로 퇴색되었다. 그러나 논리학에서 그의 우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모든 카톨릭의 철학 교사들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완고하게 현대 논리학의 새로운 발견들을 거부하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도 같이 낡은 이 체계에 집착한.. 2022. 2. 12. 이전 1 2 3 4 5 6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