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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184

4강 모범에 대하여(백합을 중심으로) 백합에 대하여 백합의 모범이 건덕적인 첫 번째 이유는 백합이 의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교에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백합은 순수한 현존으로 거기에 존재한다. 들의 백합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저 밖을 보라. 하늘의 새가 자유롭게 노니는 저 위를 보라. 거기에는 깨지지 않는 침묵이 있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도 현존하지 않는다. 게다가, 만물은 괴로워하는 자를 위한 순전한 설득이다.(본문 중에, UDVS, 161) 백합의 두 번째 "장점"은 물론 언어의 결핍이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백합은 말할 수 없다. 그녀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는 완전한 침묵이 있고 누구도 현존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로, 염려하는 자가 말을 하고 있다면, 그가 백합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2020. 3. 1.
3강 모범에 대하여(백합을 중심으로) 백합에 대하여 이제 우리가 키르케고르가 그의 강화에서 어떻게 이런 "간접적"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지 살펴보자. 그가 어떻게 새와 백합의 "부정적" 특징을 살리는지를 살펴보자. 새와 백합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사람이 되는 법, 사람인 것에 행복해지는 법이라고 이 강화는 말한다. 그때, 우리가 이 강화에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올바르게 바라봄으로써 염려하는 자가 사람인 것에 만족하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음매해보도록 하자.(본문 중에) "복음이 시인에게 그가 마땅히 새처럼 되어야 한다"1)고 말한다 해도, 우리가 새와 백합에게 배우는 것은 그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새와 백합의 과업이 단순히 거기에 존재하는 것인 반면, 사람은 존재해야has to become 한다.2) 이런 반전invers.. 2020. 3. 1.
들의 백합 공중의 새(해제3) 키르케고르는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강화를 13개를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산상수훈 5장 마지막 절은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하심처럼 완전하라고 말한다. 곧,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모범이시다. 분명, 산상수훈 5장은 주님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 왔다고 말한다.(마5:17) 산상수훈 5장까지는 이런 “신적 완전성”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6장은 새와 백합이 모범으로 등장한다. 조금 이상하다. 새와 백합이 우리의 모범이라니! 이런 익살맞은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새와 백합은 우리의 선생으로 봉사한다. 그의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13개의 강화 중에서 첫 번째 강화는 1847년에 등장한다. 에 실려 있는데,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 2020. 2. 16.
들의 백합 공중의 새(해제2) 산상수훈은 믿음의 행위를 하기에는 주눅들게 하는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율법은 살인자를 심판하지만, 복음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마5:22-23) 곧, 복음의 잣대에 의하면, 형제를 미워한 자는 이미 살인자다.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복음의 잣대에 의하면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자다.(마5:28) 율법의 요구조건보다 복음의 요구조건이 더 엄밀하다. 인간 중에 누가 이런 잣대로 이 요구조건을 다 지킬 수 있는가!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마5:17) 누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5:18) 한 마디로, 복음은 율법의 요구조건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2020. 2. 16.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해제2) 키르케고르는 선택의 문제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구절까지 확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복된 행복"과 동일시 한다. 복된 행복은 결국 이 강화의 핵심이다. 이는 또한 영원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이 영역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보인다. 반면, 보이는 세상에는 슬픈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자연의 평화는 언젠가는 창백해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복음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한 것을 강조한다. 그는 저 나라와 세상 사이의 반대를 복음이 "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라고 약속함으로써 약간 부드럽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란 남은 음식leftovers에 불과.. 2020. 2. 13.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해제1) 원리 이 강화의 원 제목은 이다. 이 강화는 시작할 때, 염려하는 자가 위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런 저항에서 더 강자가 된다. 위로하는 자는 그를 설득할 수 없고, 위로하려 할수록 그의 마음 문은 더욱 굳게 닫힌다. 따라서 이 강화는 염려하는 자를 다른 사람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꾼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싸움은 망각되고 요새화된 도시 같았던 사람은 이제 항복한 도시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라는 것이 밝혀진다. 염려하는 자는 들의 백합이 결국 내일은 "아궁이에 던져진다"는 생각에 더욱 슬퍼진다. 복음에 등장하는 새는 마태복음 10장 29절에 등장하는 참새처럼 시장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거나 거의 가.. 2020. 2. 9.